[ 마지혜 기자 ] 지난 8일 밤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 회사나 동창회 등의 송년회가 열린 각 방마다 “위하야!”라는 건배사가 울려 퍼졌다. 가장 널리 쓰이는 건배사 ‘위하여’에 발음이 비슷한 ‘하야(下野)’를 접목했다.
이 식당 종업원 김모씨(47)는 “예년에는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말이나 웃자고 하는 장난스러운 건배사가 많았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올해는 시국과 관련한 건배사가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송년회를 중심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담은 사회 풍자 건배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송년회가 ‘시국 토론장’을 방불케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정농단 사태는 송년회장을 뜨겁게 달군다. 최근 송년모임을 한 대기업의 김모 부장(49)은 9일 “회사 얘기 못지않게 나라를 걱정하는 말이 많이 나왔다”며 “시국과 관련 없는 건배사를 하는 게 머쓱할 정도”라고 말했다.
‘위하야’처럼 기존 구호형 건배사를 살짝 변형해 풍자형으로 바꾸는 게 요즘 추세다.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를 뜻하는 건배사 ‘오바마’에서 ‘마’의 뜻풀이를 ‘마음에 드는 대통령으로’로 바꿔 외치는 사람도 있다.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와 조카 장시호 씨 등의 이름으로 삼행시형 건배사를 하기도 한다. 최씨 이름의 각 글자는 ‘최대한 마시자, 순순히 마시자, 실려갈 때까지 마시자’ 등으로, 장씨 이름은 ‘장소 불문, 시간 불문, 호탕하게 마시자’ 등으로 활용된다. 선창자가 “청와대에서”를 외치면 좌중이 “방 빼라”로 화답하는 ‘촛불집회형 건배사’도 등장했다.
어수선한 시국 속에 가정과 자기 자신부터 잘 돌보자는 소박한 민심도 건배사에 녹아들고 있다. ‘나가자(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해)’ 등이 대표적이다. 취업준비생이나 사회 초년생 사이에선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라는 건배사가 인기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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