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 이후] 월가 '한국 투자 신중론' 확산…"경기 둔화 리스크 더 커졌다"

입력 2016-12-11 19:22   수정 2016-12-12 09:36

탄핵 후 IB 투자브리핑 '부정적 단어' 일색

씨티 2.4% 등 내년 성장 전망치 속속 낮춰
원화가치 7% 하락·기준금리 인하 예상도
"리더십 부재로 대내외 악재 대응 어려워져"



[ 뉴욕=이심기 기자 ]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IB)들이 9일(현지시간) 내놓은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투자 브리핑은 부정적인 단어 일색이었다. 정책 표류, 정치적 불확실성 등의 표현과 스태그네이션(경기침체), 다운리스크(하방 위험), 리세션(경기후퇴) 등의 용어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국, 심각한 도전 직면”

월가는 한국이 수출 감소와 내수 침체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이벤트까지 더해져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의 경기 둔화 등 대외 악재가 계속 쌓이고 있지만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탄핵안 가결로 단기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국정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원화 약세와 경기침체 리스크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월가의 한 연기금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각 기관들의 글로벌 투자보고서를 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투자 비중을 줄이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고 전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가별 수익률을 뜯어보면 한국이 가장 부진한 것으로 나온다는 설명이다.

실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내년 글로벌 투자전망을 보면 한국의 투자수익률이 -5.87%로 아시아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글로벌 신흥시장 전체로도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원화가치도 내년에 7% 하락한 달러당 1270원으로 예상했다. 하락 폭이 중국(-5%)보다 크고 아시아 국가 중에선 인도네시아(-8%)에 이어 두 번째다.

이에 따라 탄핵안 가결 이후 한국 기업 인수를 추진 중인 투자회사들도 향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윤활유 관련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자문사 관계자는 “투자기업이 인수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진 않지만 한국의 정치적 변동에 민감해졌다”고 우려했다. KOTRA 뉴욕무역관 관계자는 “한국의 펀더멘털(기초여건)에 문제가 없다는 대외 메시지를 자주 표시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갈수록 낮아지는 성장률 전망치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은 청와대가 경제정책의 핵심(key) 역할을 한다며 탄핵 이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씨티는 2.7%였던 기존 전망치를 2.4%로, 스탠다드차타드는 2.5%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JP모간은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주요 정책이 상당 기간 표류하고 4분기 재정집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소비 심리마저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내년 성장률을 2.3%로 낮췄다. 시장조사업체 IHS의 라지브 비스와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총리 체제하에서 취할 수 있는 정책 범위는 제한적”이라며 “차기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중대한 개혁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월가는 한국은행이 내년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원화가치의 추가적인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1월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과 대출 기준 강화, 무역 침체로 인한 경기 후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기 하락 리스크와 맞물려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정책 공백이 지속되고 부진한 소비 및 투자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도이치뱅크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경기 둔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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