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트럼프발 강달러…위안화 국제화 대신 '집안 단속'부터 하는 중국

입력 2016-12-11 20:07   수정 2016-12-12 05:35

중국, 위안화 약세 막으려 고강도 자본 통제

해외기업 M&A·해외송금 제한
'통화 자유' 반하는 조치 잇따라
FT "국제화 노력 물거품 될 위기"
일부선 "불법 자본도피 막는 것뿐"

글로벌 증시는 아직까지 잠잠
미국 금리인상 땐 상황 달라질 수도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지난해 11월30일 중국 위안화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로 편입이 결정됐다. 당시 세계 주요 언론은 “위안화 국제화의 중대한 진전”이란 평가를 쏟아냈다. 올해 10월1일 위안화가 실제로 SDR에 편입됐지만 지금은 아무도 ‘위안화 국제화’를 얘기하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히려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최근 각종 자본거래를 통제하는 조치를 내놓고 있어서다. FT는 이 같은 조치가 ‘통화의 자유로운 사용’을 핵심으로 하는 위안화 국제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유출 방지 대책 쏟아내는 중국

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된다. 위안화는 중국이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한 2005년 이후 줄곧 강세를 보였다. 중국 경제가 두 자릿수 고도성장을 지속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위안화 가치는 연간 기준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급속하게 둔화한 것이 통화가치에 반영됐다.

위안화 약세가 국제 금융시장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은 작년 8월, 올해 1월, 그리고 최근 등 모두 세 차례다. 최근의 위안화 약세는 지난달 8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선거 기간 미국 중앙은행(Fed)의 저금리 정책을 비판하고 강력한 경기부양을 공언해온 트럼프가 당선되자 달러화가 유로화 엔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강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처음에는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시장의 패닉을 촉발하지 않는 위안화 약세는 중국 정부에도 나쁠 게 없었다.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대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중국 정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위안화 약세가 과도하게 이뤄지면 중국에 들어와 있는 달러화 자금의 ‘엑소더스(대량유출)’를 불러오고 이는 중국 경제 경착륙과 금융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위기감에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주간 △중국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승인심사 강화 △외자기업 자금 해외송금 제한 △금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이 여파로 중국에서 활동 중인 일부 외자기업은 역외에 있는 본사에 배당금을 송금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1월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의 위안화 가치 급락과 중국 정부의 자본유출 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 증시가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9일 3232.88에 마감해 미국 대선 전보다 3.1% 상승했다.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초 위안화 가치 급락이 중국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증시 패닉을 촉발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의 위안화 가치 하락이 연초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연초에는 중국 실물경기 경착륙에 대한 위기감이 높았지만 현재 중국 경제는 단기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의 위안화 약세가 중국 경제 내부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 당선에 따른 강(强)달러 현상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연초 위안화 가치 급락 이후 중국 정부가 각종 자본유출 통제책으로 위안화 추가 약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전력이 있다는 점 역시 시장 관계자의 불안을 덜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이 언제까지 위안화 약세에 무덤덤하게 반응하진 않을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Fed가 오는 15일을 시작으로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당분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양국 간 금리 차가 축소돼 위안화 약세가 가속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지난달 3조500억달러까지 줄어 조만간 3조달러 밑으로 떨어질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조달러라는 상징적인 선이 무너지면 글로벌 금융시장도 불안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뢰 위기에 부딪힌 위안화 국제화

전문가들은 중국의 외환보유액 규모, 자본시장 개방 정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 금융시장 통제력 등을 감안하면 위안화 가치 급락이 중국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자본유출 통제 정책으로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는 의심받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자본유출 통제 정책은 해외로의 불법적인 자본 도피를 막기 위한 것일 뿐 위안화 국제화 정책의 후퇴와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황웨이핑 인민대 교수는 “케이맨제도 등과 같은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가는 외화자금은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자본 도피일 뿐”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예첸가 ANZ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중국에선 해외로의 자본 도피를 위한 각종 편법이 성행했다”며 “이런 것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자본통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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