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통치 부재에 국민 분노"… 사실상 박 대통령 비판
내년 대선출마 여부 질문엔 "국민들, 포용적 리더십 열망"
[ 뉴욕=이심기 기자 ]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정치인’으로서의 인생 2막을 예고했다.
반 총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유엔출입기자단 송년만찬에서 “10년간의 임기가 곧 끝난다”며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할 때(time to move on)”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측근들은 이에 대해 “반 총장이 최근 차기 한국 대통령 출마를 포함해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굳혔다는 암시”라고 설명했다.
반 총장은 이날 열린 세 건의 각기 다른 행사에서 한국 내 정치 참여의사를 드러냈다. 그는 미국외교협회(CFR)의 초청 강연에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좋은 통치가 부재한 데 따른 좌절과 분노”라며 “국민은 국가 지도력에 대한 신뢰가 배반당했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이어 “한국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일들은 6·25전쟁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를 제외하고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우회적으로만 언급해온 것과 달리 사실상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적 발언이다.
반 총장은 “한국이 이른 시일 내에 이번 사태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개인 혹은 조직의 이해관계보다 공공의 가치와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교훈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1시간 남짓한 외교협회 강연에서 반 총장은 리더와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20차례나 언급하며 지도자의 자세를 강조했다.
반 총장은 이에 앞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통해서는 ‘포용적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을 언급했다. 내년에 한국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국민들이 현재의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포용적 리더십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반 총장은 전날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가 주최한 이임 만찬 리셉션에서도 “국제사회의 위기 대부분은 국민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 지도자 때문에 생긴다”며 “리더는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연민을 갖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최측근인 김원수 유엔사무차장도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신임 유엔사무총장에게 사의를 표시했으며, 다음달 중순 반 총장과 함께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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