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테러범 찍은 기자 "총 맞아 죽더라도 내 일 해야"

입력 2016-12-21 10:47   수정 2016-12-21 10:48



(박종서 국제부 기자) 국제부에 있다보면 대형 사건 사고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스물두 살의 터키 경찰 매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가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안드레이 카를로프를 권총으로 살해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 현대미술관에서 19일 발생한 총격 사건은 한국경제신문 등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됐습니다.

“터키-러시아 화해무드 뒤흔든 ‘9발의 총성’… 시리아 해법 더 꼬이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저는 문득 총격 테러 장면을 찍은 사진기자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러범 알튼타시는 카를로프 대사의 뒤에서 9발의 총을 쐈습니다. 모두가 살 길을 찾아 피신하는 가운데 미국 AP통신의 사진기자 부르한 오즈빌리시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전세계 거의 모든 언론이 사용한 사진입니다. 같은 기자로서 저는 오즈빌리시처럼 치열하게 취재를 하고 있는가 반성하기는 기회가 됐습니다.

세계적 특종사진을 찍은 오즈빌리시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글을 공유하려 합니다. 그는 “내가 총격을 받아 다치거나 죽더라도 나는 기자다.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

러시아 사진전 개막식은 매우 틀에 박힌 행사였다. 그래서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맨 사내가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나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극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상황이었고 침착하게 계산된 살인이었다. 짧은 머리의 단정한 사내가 러시아 대사를 총격으로 쓰러뜨리는 장면이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 펼쳐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공포에 질렸으며 숨을 곳을 찾았다.

적어도 여덟 발의 총성이(사건 이후 공개된 동영상에서는 아홉 발의 총성이 들림) 깔끔한 갤러리 안에서 울려퍼졌다. 대혼란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기둥 뒤에 숨였고 테이블 아래로 몸을 피했다. 바닥에 누운 사람도 있었다. 나는 무서웠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벽 뒤에 숨을 곳을 발견했고 나의 일을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이다.

전시회의 타이틀은 ‘칼리닌그라드에서 캄차카까지, 여행자들의 눈으로부터’였다. 러시아 대륙의 최서단 발트해 연안부터 동쪽 끝 캄차카 반도까지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사진전에 갔다. AP의 앙카라지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주요 인사들의 축사가 이미 시작됐었다. 러시아 대사가 축하연설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좀 더 앞으로 나아갔다. 터키와 러시아 관계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자료사진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내 생각에는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자신의 고국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때때로 말을 멈췄는데 통역자가 러시아어를 터키로 바꿔줄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대사가 정말 차분하고 겸손하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총격은 그러한 생각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이뤄졌다. 군중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전시관 바닥에 러시아 대사가 쓰러져 있었다. 불과 몇 미터 앞이었다. 대사의 주변에서 피를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러시아 대사가 뒤에서 총에 맞았다고 생각한다. 몇 초가 지나서야 무슨 일이 터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다. 내 눈 앞에서 한 생명이 사라졌다.

나는 뒤로 물러서 왼쪽으로 갔다. 그 총잡이(매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라는 이름의 경찰로 확인됐다)는 총으로 전시관 오른쪽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처음에 나는 테러범의 동기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체첸반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중에 그가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를 외쳤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러시아의 알레포 폭격에 화가 났을 수 있다. 알레포는 반정부군이 점령하는 지역으로 러시아는 반정부군을 쫓아내기 위해 폭격을 했다. 많은 시민들이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과) 맞서 싸우다 죽었다.

테러범은 또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나머지는 아라비아어로 말해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평정심을 잃었다. 그는 러시아 대사의 시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전시관 벽에 걸린 사진을 거세게 부서뜨렸다.

총잡이가 내 쪽을 돌아보면 어쩌나 무서웠다. 그 위험성을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절망에 빠진 관객들을 위협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총격을 받아 다치거나 죽더라도 나는 기자다.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고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나중에 나에게 ‘왜 사진을 찍지 않았냐’고 물으면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수년간 사진을 찍다가 세상을 떠난 친구와 동료 생각까지 났다.

머리 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 나는 테러범이 불안해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봤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러서라고 소리쳤다. 보안요원들은 우리에게 전시관을 빠져나오도록 명령했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구급차와 무장차량이 곧 도착했다. 경찰 작전팀도 왔다. 총잡이는 곧 총에 맞아 죽었다.

내가 사진을 편집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테러범은 러시아 대사가 연설을 할 때 뒤에 서 있었다. 마치 친구처럼, 마침 경호원처럼. (끝) /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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