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동해오픈 깜짝 준우승
드라이버 입스·가난 이기고
기대주로 떠오른 '독종 골퍼'
골프 잘하려 이름까지 바꿔
국가대표 탈락 등 긴 슬럼프
미국서 하루 14시간 지옥훈련
샷 감 되살려 '화려한 재기'
[ 최진석 기자 ] 지난 10월2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제32회 신한동해오픈 최종 4라운드가 열린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파71·6933야드) 18번홀(파4). 그린 주변을 에워싼 갤러리들 속에서 김태우(23·사진)가 침착하게 버디 퍼팅 준비를 했다. 컵까지의 거리는 15m. 오르막을 시작으로 2단 경사가 있는 어려운 퍼팅이었다. 차분하게 어드레스 자세를 취한 김태우는 퍼팅을 했고 공은 그대로 컵에 들어갔다. 준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18개 홀을 돈 그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2014년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를 고된 훈련으로 극복한 그는 올시즌 KPGA 선수권대회 9위를 포함해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오는 29일 태국 전지훈련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21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신한동해오픈으로 받은 상금 1억원은 모두 어머니께 드렸어요. 그동안 골프하는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부모님께 모처럼 도움이 돼 기뻤습니다.”
김태우는 먼저 곤궁한 살림에도 자신의 골프 공부를 뒷바라지해온 부모의 노고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부모와 함께 실내 연습장에 갔던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클럽을 처음 잡았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골프에 관심을 보이자 그해 생일에 골프클럽을 선물해줬다.
김태우는 “당시 또래 아이들에게 낯선 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신이 났다”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었고 연습장에서 일하는 형들(레슨 프로)과 함께 노는 게 재미있어 방과후부터 밤까지 그곳에서 놀았다”고 말했다.
즐기면서 골프를 치니 실력도 쑥쑥 늘었다. 클럽을 잡은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인천시 시합에 나갔다. 여기서 김태우는 7~8명의 또래 선수들을 제치고 덜컥 우승을 했다. 이때부터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태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진지하게 정말 선수의 길을 갈 것인지 물어봤다”며 “그때 망설임 없이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염려대로 선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성적이 신통치 않자 그는 2012년 김효석에서 김태우로 개명도 했다. 그는 “어머니가 사주를 보러 갔더니 김효석이라는 이름으로는 골프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며 개명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이름을 바꾼 이듬해 그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곧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이다. 국가대표 동기이자 친구인 이수민(23·CJ오쇼핑), 이창우(23·CJ오쇼핑)와 함께 출전하고픈 꿈이 좌절됐다. 이뿐만 아니었다. 선발전 내내 드라이버 티샷이 우측으로 밀렸고, 결국 드라이버 입스가 왔다. 이후 6개월간 그는 드라이버와 씨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부친이 하던 건축사업도 어려워졌다. 전지훈련을 갈 형편도 안 됐다.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기적처럼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10주간 훈련에 임했어요. 취침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훈련에 쏟았어요. 새벽 5~6시에 일어나 저녁 8~9시까지 클럽을 놓지 않았습니다. 훈련을 거듭하니까 드라이버 입스가 점차 지워져 가더군요.”
고된 훈련의 성과는 달았다. 그는 지난해 3월 열린 2015 KPGA 프론티어투어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이어진 경기에서도 3~4위에 오른 그는 코리안투어 Q스쿨도 통과하며 투어카드를 획득했다. 상승세는 올해 말 신인왕 수상까지 이어졌다.
김태우의 꿈도 다른 프로 골퍼들처럼 PGA(미국프로골프)투어 진출이다. 어릴 적부터 그가 품어온 꿈은 메이저대회인 디오픈에서 우승해 올해 우승한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처럼 클라레저그(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기회는 왔다. 내년에 열리는 한국오픈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하면 디오픈 출전권을 주는 것이다.
그는 “내년 한국오픈에서 디오픈 출전권을 반드시 따내는 게 목표”라며 “대회가 열리는 우정힐스CC에서 맹연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는 퍼팅과 쇼트게임을 집중 훈련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에게 2017년은 각별하다.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다. 김태우는 “닭띠인 나의 해여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느낌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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