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나르시시스트와는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둬라

입력 2016-12-28 17:37  

내면에 폭력·파국 안고 있는 나르시시즘
정상으로 돌리려고 절대 노력하지 말고
선 긋고 단호히 자기 뜻 전하는 게 좋아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한 미란다 편집장은 자기애적 성격자(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을 마음대로 하는 제멋대로의 행동과 끝을 알 수 없는 오만, 그리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맹렬한 분노는 보는 이에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동시에 그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착취당하는 주인공과 주변인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미란다 편집장이 제시한 달콤한 기회를 과감히 던져버리는 모습은 결코 용기가 있어서도,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도 아닌 듯하다. 아마도 주인공은 사는 길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나르시시스트인 미란다 편집장과 같이 가는 길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길이며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우울증으로 가는 과정이다.

진료실에서 상담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명씩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주변의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는 환자를 만나게 된다. 환자들은 자기 자신을 빼앗기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주변의 나르시시스트들이 환자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고, 학교의 선배이고, 선생님이고, 친구 혹은 애인이기 때문이다. 같이 지내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설마 그들이 자신을 착취하고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생각은 미처 못한다. 하지만 우리를 착취하는 그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정상인과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유능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다정한 웃음을 짓고 있으며 이해가 충돌하지 않을 때는 매우 예의 있어 보인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에게 마치 미란다 편집장처럼 달콤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들로 인해 생기는 우울을 벗어나는 길의 첫걸음은 우리 주변에 있는 나르시시스트를 찾아내는 일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미묘하게 비현실적인데, 사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같은 일이라도 자신이 하면 어려운 일이 되고 남이 하면 쉬운 일이 된다. 내가 받는 보상은 정당한 대가이거나 혹은 그에 못 미치는 것이고, 남이 받는 보상은 우연한 행운이나 과장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타인의 것을 종종 빼앗는데 사실 빼앗는다는 느낌도 없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뻔뻔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데 그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큰돈을 요구하거나 딸의 신용카드를 함부로 긁어대는 엄마, 힘든 일은 부하직원에게 떠넘기고 공은 자기가 차지하려는 직장 상사, 상대방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고 사랑만 받으려는 연인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주변의 나르시시스트를 찾아냈다면, 그다음에 명심할 일은 그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려고 ‘절대’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당신의 노력에 거의 반응하지 않으며 행여 그런 태도를 보이더라도 일시적이거나 보여주기식일 가능성이 높다. 노력하면 할수록 무기력해지고 좌절감에 빠지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 정신건강의 관점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따라서 이런 나르시시스트와 지내려면 그들을 고치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그들과 일정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경계를 넘어오는 그들에게 물질적, 심리적인 선을 긋고 현실을 왜곡하거나 혼동하려는 그들에게 반복해서 현실을 알려주며 때로는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당신이 빼앗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그들은 저항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떠나겠다고 위협하겠지만, 그리고 당신의 감정을 반복해서 흔들겠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경계선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의 끝이 죽음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현실에서도 나르시시즘은 그 내면에 폭력과 파국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처하지 못하면 그 어두운 면은 당신의 몫이 된다.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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