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기자]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자동차들의 격전지는 데이토나에서 유타주의 보네빌 소금평원으로 옮겨 갔다. 하지만 하얀 모래사장을 내달리는 데이토나에서 레이싱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1936년 데이토나 고유의 레이싱 경기를 개최하며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 갔다.
1937년부터는 200마일 아메리칸 모터사이클챔피언십이 개최됐다. 이는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데이토나 200’이라는 이름의 클래식 경기로 자리잡았다. 절반은 해변 백사장에, 절반은 좁은 해변도로 구성된 트랙에서 벌어지는 모터사이클의 거친 경쟁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1948년에는 NASCAR(전미 스톡카 경주 협회)가 설립됐다. 현재 나스카 레이스는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모터스포츠 경기다. 20세기 초반 데이토나에서 열렸던 스피드위크도 부활해 1948년부터 다시 열렸다. 매년 2월마다 플로리다에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은 데이토나 해변을 비추었고, 그 아래서 2주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자동차들이 자태를 뽐내며 달렸다. 이 기간 자동차들이 내달리며 세운 기록들은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때 뛰어난 기록을 세운 자동차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미국 남동부 출신이었다고 한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끼고 있는 조지아와 노스, 사우스 캐롤라이스 주에서 만든 주류를 밀반입하던 사람들이었던 것. 술을 싣고 추격해오는 경찰을 따돌리면서 달리다보니 자연스레 운전 실력이 향상됐던 것이다.
1950년대까지 레이싱의 열기는 이어졌고 역설적으로 그와 함께 해변 레이싱의 경쟁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차량의 성능이 발전할수록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레이싱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스카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윌리엄 프랑스 시니어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데이토나에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한 레이스트랙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1959년에 개장한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는 데이토나의 명성을 이어갈 견고한 입지를 다졌다.
1959년 새로 개장한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오벌 서킷이었다. 서킷이 바깥 부분이 상승하는 경사구조를 가진 것이 바로 오벌 서킷이다. 이런 구조는 고속으로 커브를 돌 때 원심력의 영향으로 트랙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커브의 경사 각도는 31도이며 가장 높은 지점의 높이는 10m 였다. 2.5마일, 4km에 달하는 규모도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윌리엄 프랑스 시니어는 이 서킷을 건설하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나스카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서킷을 만드는 것이다.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의 설립 배경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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