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정부·화주·금융 상생 손잡고
우리화물량 증대, 금융부담 낮춰야"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해법학회장 >
세계 5위였던 한국 해운산업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 외항정기선사의 대표주자 한진해운은 아마추어적인 법정관리 결정으로 청산을 앞두고 있고, 하나 남은 현대상선마저 완전한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가입도 못한 채 세계적인 무한경쟁의 바다에 내던져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정기선해운은 선사들이 모여 운임을 정하는 해운동맹을 이용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 후 해운동맹이 와해돼 선사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운임은 하락했다. 컨테이너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상품을 실어나를 수 있는 선복량은 크게 늘었지만 물동량은 오히려 감소해 선박의 빈 공간은 더 많은 상태(최대 30%)가 지속되고 있다. 대폭적인 폐선 조치가 없으면 운임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얼라이언스을 통해 경비를 절약하면서 수지를 맞추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선복량을 조절하는 공조체제가 없다보니 다른 선사들이 도산해 선복량이 줄어들기를 선사들은 기다리고 있다. 하필이면 우리 한진해운이 이런 수급불균형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선사를 보호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해운시황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운임은 자율화됐고 수요보다 공급이 초과하는 상황에서 한국 선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한진해운이 제3국의 화물을 운송해 벌어오던 5조원의 외화, 한진해운의 총 매출 8조원(대한항공 수준)이 없어져도 외국의 선사를 이용하고 다른 산업으로 그만큼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까 더 이상 국적 선사는 없어도 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매출 8조원의 후방산업 효과는 대단히 큰 것이 아닌가. 국적 선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정부는 선사에 대한 지원 및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선복수급의 조절이 깨진 상태에서 각국 정부와 선사들은 치킨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다시 사업다각화를 해야 한다. 외항 컨테이너선 이외의 다른 부정기선 시황은 좋기 때문에 부정기선 운항에서 번 수익으로 컨테이너선 운항의 적자를 메우는 시스템을 가지고 불황을 버텨야 한다. 이것은 과거 우리나라 선사들이 해왔던 방식이고, 일본 NYK(육상물류 분야)와 머스크(에너지산업 분야)가 취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 현대상선이 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더 발주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 유조선 등의 건조를 하겠다고 한 결정은 적절한 선택이다. 적재할 화물을 구하기도 힘들고 운임이 낮기 때문에 적자가 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에 황금비율로 가지고 있던 포트폴리오를 현대상선이 회복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이 불황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셋째, 우리 화물 적취율(해상 수출입 화물량 중 국적선 수송 비중)을 높이고 금융이자 부담을 낮춰줘 손실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선사들은 대량 화주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현재 우리 화물의 적취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50% 수준으로 올려주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경기변동에 따라 5~10% 운임을 증액 혹은 감액해 선사와 화주가 불황 시 그 어려움을 도와주는 상생 운임약정을 체결하자. 일본은 자국선박의 이용률이 70%에 이른다. 1990년대 중반 우리 화물 적취율이 50%에 이른 적이 있으므로 이는 다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이런 상생의 약정은 선사(선주)와 금융단과도 체결이 가능할 것이다. 해운경기가 나쁘면 금융단은 대출이자를 시장금리보다 낮춰주고 해운경기가 좋아진 뒤 높게 받으면 선사 경영에 도움이 된다. 우리 외항정기선 해운이 깊은 장기불황의 파고를 넘고 부활하도록 선사, 정부, 화주 및 금융권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해법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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