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 경영활동 제약하는 배임죄, 기업가정신 꺾는다
임무위배 여부도 판단 어려워…무죄율이 일반범죄의 5배
미국 등 형법엔 배임죄 없어…경영판단은 폭넓게 면책 인정을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국민연금 투자본부장의 배임 여부가 논란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이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특검이 면밀히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형법 제355조 제2항에는 배임죄가, 동법 제356조에는 업무상 배임죄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제3조에는 위 양 죄의 가중처벌이, 상법 제622조에는 특별배임죄가 각각 규정돼 있다. 규정의 내용은 모두 같아서 ①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②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③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④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⑤형벌은 고의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내리는 것이므로 고의도 있어야 한다. 특경법에 따르면 처벌은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땐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무기징역은 살인죄의 형량과 같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배임죄가 왜 기업인을 공포에 몰아넣는가? 범죄의 구성요건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우리 대부분은 타인을 위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특히 기업인은 법적으로 타인인 법인, 즉 회사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항상 배임죄에 노출돼 있다.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아니라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주, 근로자, 채권자, 납품업자 등 누구든지 기업인이나 경영자를 고발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최순실 등에 대한 자금을 제공한 행위는 업무상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배임행위가 된다며 삼성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로서는 고발·고소된 사건을 일단 수사하지 않을 수 없고, 수사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결과란 기소해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다. 기소하지 않는다면 수사 후 평가받을 근거가 없다. 여기에 검찰이 다소 무리한 기소를 하게 되는 요인이 있다.
실패한 경영판단은 범죄?
둘째, ‘임무에 위배’라는 것이 문제다. 임무에 위배했는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선의로 행한 도전과 모험이 실패로 끝나면 혹시 임무위배 행위가 없었는지 사후 점검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실패한 경영에 대해 사후에 배임죄가 문제 된 사례가 많다. 심지어는 성공한 사례에 대해서도 배임죄가 문제 된 적이 있다.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은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 2200억원에 대한 취소소송 제1심에서 국세청이 1900억원을 KBS에 환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과정에서 재판장의 조정 권고에 따라 500억원만 돌려받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배임죄로 고발됐다. 이 사건에서 정 사장은 제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조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장의 합의권고에 따라 합의했다고 해서 고발당한 정 사장은 기필코 1400억원의 국고손실을 보게 만들었어야만 무죄이며, 합의로 1400억원의 국고손실을 막은 것은 범죄라는 논리가 된다. 물론 KBS 편에서 보면 1400억원의 손해이긴 하다.
배임죄는 무죄율이 일반 범죄의 다섯 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심 판결과 2심 판결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배임죄 재판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이석채 전 KT 사장의 경우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결됐다. 자원비리사건에 연루된 한국석유공사의 강영원 전 사장은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사회에서 결의해도 면책 안 돼
셋째, 형법은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어야만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법원은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손해의 위험을 야기하기만 했어도 처벌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회장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같은 그룹 계열사를 지원했다. 그 결과 그 계열사들은 되살아났고, 자금을 공급해준 모기업도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묵과하고 지원했다고 해서 김 회장은 기소됐고 2014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현대차 계열사의 현대우주항공, 현대강관 유상증자참여 사건에서 제1심법원과 제2심법원은 실제 손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계열사들이 출자금 회수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 자체가 손해 발생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기업이 하는 일 중 손해를 볼 위험이 없는 그런 안전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든가. 기업가정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가 핵심 내용이다. 배임죄는 기업인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범죄다.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지원을 결정할 때도 이사회에서 배임죄가 논란이 된 것과 같이, 이사회 결의를 했다고 해서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고 해도 면책되지는 않는다. 기업계에서는 걸리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경영이 실패해 회사가 손해를 보면 배임죄의 그림자가 엄습해 온다.
넷째, 고의가 있어야 한다. 본래 고의는 내심의 의사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증명할 수 없다. 법원은 미필적 고의까지 처벌한다. 미필적 고의란 반드시 어떤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은행원이 대출해 주면서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회수할 수 없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대출을 감행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배임죄가 성립한다.
배임죄가 형법에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다. 한국, 독일과 독법계 유럽 국가, 프랑스, 일본 등이 배임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 등 다른 나라 형법에는 배임죄 규정이 없다. 배임죄가 존재하는 외국에서도 기업인을 이 죄로 처벌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갑자기 배임죄가 활성화됐다. 2008년께 최고조에 이르다가 2013년께부터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재산상 손해, 배상청구로 해결을
아직도 많은 기업인이 사기를 치고 횡령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형법학자들은 배임죄를 절대 폐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임죄는 재산범이다. 재산상의 손해는 민사적 배상청구로 해결해야 한다. 재산상의 문제를 형사범으로 다스리는 것은 선량한 기업인의 기업가정신을 꺾는다. 배임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적어도 기업인의 경영 판단에 대한 폭넓은 면책이 인정돼야 한다. 한국에는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문화가 부족하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미국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육성하지 못하는 한국 경제는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업가정신을 부숴버리는 배임죄는 폐지돼야 한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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