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장비 공유 첫 시도
컨테이너 물동량 67% 증가
장금·흥아, 신항로 개척 기회
[ 정지은 기자 ]
원양선사와 근해선사 간 전략적 협력체제가 구축된 것은 국내 해운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여서 해운업계에선 새로운 시도다. ‘생존 위협을 받는 국내 선사들이 결단을 내렸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손잡은 국내 선사들
현대상선과 장금상선, 흥아해운은 3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해운동맹 ‘HMM+K2 컨소시엄’을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이 동맹은 일본 중국 동·서남아시아 등 아시아 전역의 노선을 공동 운항하게 된다. 오는 3월부터 2년간 운영된다.
이번 협력은 일반적인 해운동맹의 단순 공동 운항 수준을 넘어선다. 선복 구매(다른 선사의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사는 것), 선복 교환(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서로 교환), 선박 공유(항로를 운항할 때 선박을 섞어 사용) 등 기본적인 협력뿐 아니라 항만 인프라에 공동 투자하고, 컨테이너 장비도 공유하기로 했다. 컨소시엄은 올해 출범 후 목표를 물동량 442만TEU(1TEU=6m짜리 컨테이너 1개), 매출 21억달러로 세웠다. 지난해 전체 물동량은 373만TEU, 16억5600만달러였다.
원양선사와 근해선사는 운항 노선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지만 이를 뒤집었다는 게 3사의 설명이다. 이상식 현대상선 컨테이너본부장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용하지 않는 선복이나 초과 선복이 발생하면 서로 균형을 맞추며 잉여 자산을 줄이고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이번 협력을 통해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이 보유한 한국~일본 40여개, 한국~중국 10여개 등 아시아 노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 20개인 아시아 노선이 102개까지로 늘어난다. 또 현대상선이 아시아 역내로 실어나르는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올해 155만TEU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93만TEU보다 67% 많은 수준이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은 그동안 취약했던 한·중·일 3국 간 신규 항로를 개척할 기회를 얻게 됐다. 비용 절감과 화주 서비스 강화를 통한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환구 흥아해운 부사장은 “지난해 아시아 역내 물동량 1800만TEU 중 국내 중견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900만TEU에 불과했다”며 “이번 동맹을 계기로 나머지 물동량을 추가 확보하는 것도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원양선사로 키울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3사 측 설명이다. 다만 현대상선이 세계 해운동맹 2M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미주나 유럽 구간은 협력 범위에서 제외한다.
◆쪼그라든 한국 해운 상생전략
이번 협력은 지난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쪼그라든 해운업계를 살리기 위한 처방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선사끼리 힘을 모아 과당 경쟁을 피하고 공동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취지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상위권 공룡 선사들이 인수합병(M&A), 치킨게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국내 해운선사는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국내 선사들이 상생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라고 말했다.
협력 대상을 현대상선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 3개 선사로만 한정짓지는 않기로 했다. 김 부회장은 “우선 합의가 이뤄진 3개 선사를 중심으로 동맹을 시작하지만 향후 추가 영입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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