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전역 후 아마추어 입문
일본서 맹활약…유럽선 부진
현대차 랠리 드라이버 '부활'
올해부터 i20 랠리카 타고 WRC R5클래스 질주 채비
"세계 무대 나가 우승하겠다"
[ 최진석 기자 ]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월드랠리챔피언십(WRC) 테스트 드라이버가 됐습니다. 올해는 현대자동차 WRC팀의 메인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릴 겁니다.”
임채원(33)은 ‘자동차 경주의 철인 3종 경기’라 불리는 세계 최대 오프로드 경주 대회인 WRC에서 뛰는 카레이서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WRC 팀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드라이버로 기용돼 주목받은 그는 올해 더 좋은 성적을 거둬 팀 내 핵심 드라이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늦바람이 무섭다
임채원 선수는 늦깎이 카레이서다. 그가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알게 된 건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 1학년을 마칠 때 쯤이다. 그는 “우연히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경기를 보러 갔다가 레이싱카에 빠져들었다”며 “이듬해 군 입대 후 자동차 잡지를 탐독하며 자동차와 튜닝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임 선수는 전역한 뒤 600만원을 들여 현대차의 스포츠쿠페 투스카니 중고차를 샀다. 도로를 내달리던 그는 아마추어 레이서로 입문해 ‘금호엑스타’ 대회에 출전했다. 2010년에는 CJ 티빙닷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1600㏄ 클래스에서 본격적인 카레이서 활동을 시작했다. 기아차 프라이드를 탄 임 선수는 그해 7월 일본 오토폴리스 서킷에서 열린 대회 첫 경주에서 깜짝 우승했다. 2010년 이 대회 전체 시즌을 3위로 마무리한 그는 모터스포츠 선진국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2011년 일본 ‘슈퍼 포뮬러 주니어’에 참가한 것. 낯선 포뮬러카를 탄 그는 초반에 고전했지만 그해 8월 열린 네 번째 경주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가능성을 확인한 임채원은 2013년 모터스포츠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날아갔다. 유러피언 F3 오픈에 참가한 것. F3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은 F1에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스페인 명문 팀인 에밀리오데빌타팀의 시트를 확보한 그는 1라운드 경주에서 2위, 5라운드에서 우승하는 등 맹활약했다. 첫 시즌을 20여명의 드라이버 중 13위로 마쳤다. 유럽 무대에서 전체 시즌을 소화한 첫 한국인이었다. 그가 목표로 잡은 ‘유럽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활동하는 프로 드라이버’의 꿈도 한 발 앞으로 다가온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성적은 후진했다. 임 선수는 “성적 압박에 시달리자 결과가 나빠졌다”며 “결국 최악의 성적표를 들고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드라이버의 꿈도 유럽에 놓고 왔다.
◆“첫 한국인 랠리 드라이버 되겠다”
임 선수는 2015년 한국에 돌아온 뒤 반 년 동안 칩거했다. 그는 “꿈을 잃은 충격 때문에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현대차가 한 방송사와 손잡고 WRC 랠리 드라이버를 선발하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 것이다. 여기에 지원한 그는 5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첫 한국인 랠리 드라이버가 됐다. 그는 작년 1월 현대차 모터스포츠팀 본부가 있는 독일로 날아갔다.
WRC에는 크게 두 개의 하위 클래스가 있다. 임 선수는 지난해 가장 하위인 WRC R2 클래스에서 뛰었다. 올해는 한 등급 위로 올라가 WRC R5 클래스에서 경기를 뛴다. 차량도 현대차가 개발한 i20 R5 랠리카를 탄다. 그는 “올해가 매우 중요한 한 해”라고 강조했다. WRC 경기 시스템을 완전히 흡수하고 i20 차량에도 적응해야 비로소 WRC 메인 무대에서 뛰는 랠리 드라이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선수는 “유일한 한국인 드라이버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올해 실력을 인정받아 반드시 WRC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는 “WRC에서 한국인이 활약하고 우승도 한다면 한국에서 카레이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며 “미래에는 한국에서 어린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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