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비타민 커버스토리(4~5면)는 ‘보수 진보의 감별법’을 생각해본다.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양은 300여년간 보수와 진보가 끝없이 대립했다. 합리론과 경험론이라는 지적 전통이 논쟁의 뿌리였다.
프랑스 계몽주의적 합리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이어진 합리론자들은 세상을 설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영국식 경험론은 달랐다. 오랜 경험 속에서 좋은 결과는 계승되고, 나쁜 결과는 폐기되면서 세상이 자생적으로 형성됐다고 봤다.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이 이를 대변했다. 18세기에 왕정이 붕괴하자 이들은 정치체제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졌다.
세계관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나뉜다. 진보는 세상이 나빠지고 있으므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세상이 나아지고 있으며 점진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의 불행을 사회구조 때문이라 여기는 진보주의자들은 ‘큰 정부’를 통해 국민의 삶을 보장하고자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 자생적 질서인 시장의 자유도 중시한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정강 정책에서 명실상부한 보수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제까지는 지역 맹주를 따라 몰려다니는 패거리 집단과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 대해서도 진정한 보수가 아니란 지적이 많다. 보수우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기득권만 찾아서는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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