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울산 민주투사 정계석 추모 평전 발간'

입력 2017-01-10 12:58  


1970년대 울산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국군 보안사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고(故) 정계석 씨(1977년 사망) 추모 평전이 발간됐다. 장성운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이 정 씨의 40주기(2017년 2월)에 맞춰 펴낸 것이다.

울산시 북구 천곡동 속심이 마을에서 태어난 정 씨는 26살인 1960년 울산 최연소로 제3대 농소면의원에 당선됐다. 정 씨는 농소면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부당한 비료 배분을 놓고 면장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무장 공비에 의해 소실(燒失)된 호계역사의 조속한 재건축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 씨의 발언록 등이 담긴 당시 농소면의회 속기록은 현재 울산시의사당 1층 홍보실에 전시돼 있다. 농소면의회 등 3대 지방의회는 5·16 군사 쿠데타로 8개월 만에 폐쇄됐다.

정 씨가 민주화운동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맞붙은 7대 대선에서였다. 정 씨는 신민당원으로 울산 방어진 개표소 참관인으로 참가했다. 개표가 끝나갈 무렵 박 모 선거관리위원장이 박정희 후보의 표를 무더기로 투표함에 넣는 것을 발견했다.

정 씨는 개표 중지 요청과 함께 박 위원장과 투표함을 트럭에 태우고 울산 시계탑 사거리까지 와 시민들과 규탄대회를 열었다.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의 울산 지구당 수석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정 씨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인 1972년의 10월 유신 선포 직후 부산의 국군 보안사로 연행됐다.

전기와 고춧가루물고문, 몽둥이 구타 등 온갖 고문을 받아 수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군사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문 후유증 때문에 병보석으로 석방됐지만 5년만인 1978년 2월 숨졌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우정)은 ‘정계석 씨는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로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에 의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통지서를 2001년 8월 가족들에게 발부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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