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리스크에 성장 날개 꺾인 터키

입력 2017-01-10 19:33  

정치적 혼란에 투자·관광'뚝'

쿠데타·테러에 '경제 몸살'
리라화 떨어지고 물가는 급등
취약 5개국 중 나홀로 내리막길

성장률 집착한 대통령
금리인상 막아 경기침체 가속



[ 박진우 기자 ] 한때 급격한 자본 유출을 겪으며 ‘취약 5개국(F5)’의 오명을 받던 주요 신흥국 경제가 호전되는 가운데 터키만 나홀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F5는 터키를 비롯해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터키의 경기침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사진)의 장기집권 행보에 대한 우려와 연이은 테러 등 정치 리스크를 수습하지 못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물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투자자들도 터키를 외면하고 있다.


◆투자자 떠나고, 관광객 등 돌려

2013년 5월 말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완화 종료 가능성을 시사하자 대부분의 신흥국에선 급격히 자금이 유출되는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이 발생했다. 이 중 특히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밑돌아 증시가 크게 흔들린 국가로 F5가 지목됐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터키는 F5 가운데 ‘나홀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4.0%) 이후 계속 하락세다. 지난해 4분기엔 -1.8%(연율 환산)를 기록했다. 브라질(-3.3%→0.5%) 인도네시아(5.1%→5.5%) 인도(7.6%→7.7%) 남아공(0.1%→0.8%) 등 터키를 제외한 F5 국가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투자자는 또다시 터키 경제를 외면하고 있다. 계속된 리라화 가치 하락 때문에 채권, 주식 등을 비롯한 자산을 매입할 때 발생하는 환손실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투자자금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지난해 미국 달러화 대비 17% 하락했다. 신흥국 중에선 아르헨티나 페소화 다음으로 큰 폭의 하락세다.

터키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까닭은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연이은 테러와 정치 혼란에 터키를 향한 관광객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2015년 기준 하루평균 1만2000여명에 달한 관광객 수는 지난해 8000여명까지 줄었다.

◆‘에르도안 리스크‘

파이낸셜타임스(FT)는 터키에서 관광객·투자자가 발을 돌린 이유로 ‘정치적 위험’을 지목했다. 무엇보다 13년간 집권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적인 장기집권체제에 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집권한 이후 수백 개의 공립학교를 이슬람 율법학교로 바꾸는 등 무슬림 근본주의적 정책을 펼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군부 세력이 이 같은 행보에 반감을 지니면서 지난해 7월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6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를 진압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무원·군인·언론인·판사를 감금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한편 내년 봄에 2029년까지 집권을 가능토록 하는 국민투표를 할 예정이다.

정치 혼란을 틈타 연이어 발생한 테러도 관광객의 발걸음을 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올해 첫날에도 이스탄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테러를 자행해 39명이 사망했다. 터키에서 지난해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174명에 이른다.

‘에르도안 리스크’는 터키 중앙은행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 FT는 “터키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에 나서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고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려야 하는 입장”이라며 “당장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에르도안 대통령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위적으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한 재정적자와 저금리 기조 때문에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은 8.5%(연율 환산)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웃돌자 터키 물가상승률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시리아 등에서 30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GDP 대비 1.3%에 이르는 예산을 지출하는 것도 투자자가 발걸음을 돌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FT는 “아직 터키에 최악의 상황은 닥치지 않았다는 우려가 크다”며 “자산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는 정치적 위험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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