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출판유통 혁신 절감케 한 송인서적 부도

입력 2017-01-11 17:56  

50억원 정부 지원도 언 발에 오줌 누기
'문방구 어음' 결제하는 관행으론 안돼

송태형 문화부 차장 toughlb@hankyung.com



새해 벽두 몰아닥친 서적 도매업체 송인서적 부도의 한파로 출판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송인서적은 1998년에도 부도를 냈다. 그때는 정부와 출판계의 도움으로 구제를 받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출판사들로 구성된 채권단 회의는 이미 ‘회생 불가’ 판정을 내렸다. 정부도 회생이 아니라 파장 축소에 맞춘 대책을 내놨다.

결국 청산이다. 당장 자금 경색과 서적 유통 마비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중소출판사·서점의 연쇄 타격, 인쇄·제본소 등의 2차 피해도 우려된다. 50억원 규모의 연 1%대 융자 지원 등 정부 대책이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한 출판인의 표현처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출판사들이 직거래하는 온라인·대형 서점 위주로 시장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중소서점 상대하는 도매상 하나 무너졌다고 왜 이들 호들갑이냐’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실상은 만만치 않다. 우선 피해 범위가 넓다. 송인서적은 웅진 계열 북센과 업계 1, 2위를 다투던 곳이다. 거래 출판사가 2000여곳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출판사들은 대부분 송인서적과 거래해 왔다. 이번 부도로 수천만~수억원의 피해를 봤다.

부도의 여파를 키운 주범은 후진적 출판유통 관행이다. 서적 도매업체 중에 송인서적이 유독 심했다. 이른바 ‘문방구 어음’으로 결제를 했다. ‘7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한 경우도 상당수다. 어음 피해 규모가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이유다. 출판사들은 이 어음들에 배서해 인쇄소, 제본소 등으로 돌렸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판매 정보 시스템’의 부재다. 출판사는 도매상을 통해 책을 보내지만 어느 서점에서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판매 내역에 따라 이뤄져야 할 대금 결제가 주먹구구식으로, 그것도 출판사 파워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출판사 미지급금이 270억원이다. 어음으로도 받지 못한 돈이다. 대부분은 서점 수백 곳과 도매상 창고에 책의 형태로 남아 있고, 일부는 팔려서 서점들이 현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회수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어느 서점에 어떤 책이 얼마나 깔려 있고, 팔렸는지 파악할 수 없어서다. 6000만원대 피해를 본 A사 대표는 “1998년 1위 도매업체 보문각이 부도났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며 “도매상 창고에 있는 책들이라도 회수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독서인구 감소, 유통시장 급변 등 구조적 요인이 송인서적 부도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거의 20년간 달라지지 않은’ 경영의 실패다.

중소서점은 온라인 서점의 급성장과 대형 서점의 유통망 확장 등으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소매시장의 한 축이다. 출판시장의 뿌리인 중소서점이 살아야 출판도 산다. 출판사들이 직거래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지고 어음 결제 등 거래 환경이 좋지 않은데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송인서적 부도는 출판사와 중소서점을 연결하는 유통시스템 혁신이 얼마나 시급한지 일깨웠다. 판매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투명한 거래 관행을 확립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송태형 문화부 차장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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