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공학도 출신인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지인들이 그에 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계산된 정치적 발언보다는 원리와 원칙에 근거한 신중한 화법을 선호한다. 당장이라도 성과를 내놓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인사들과는 달리 진중한 성격이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이 부총리의 취임에 교육계가 기대를 건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라면 치열한 정쟁(政爭) 속에서도 산적한 교육 현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우일 서울대 공대 교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 부총리는 지난 9일 기자단 신년 만찬에서 “올해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 지원에 힘써 보겠다”며 자신을 둘러싼 어려움을 에둘러 호소했다. ‘차별 없는 교육 기회’는 그가 취임사에서 제1의 정책과제로 내세운 사안이다.
이 부총리가 소신을 펼칠 수 없었던 이유는 익히 아는 바다. 어린이집 지원용 보육예산을 누가 내느냐를 놓고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각을 세웠다. 그는 한 차례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보·혁 갈등도 이 부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교육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이 선진국들은 앞서 달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여러 명 배출한 일본은 최근 아시아 최초로 글로벌 표준 프로그램을 도입해 대학입시에 활용하는 등 교육개혁을 했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교육부의 대학정책 부서를 떼내 산업담당 부서와 결합하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 부총리가 ‘하고 싶던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에 교육부가 연루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하니 교육부조차 ‘최순실 수렁’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이과 장벽을 허문 융합교육, 기업과 대학 간 산학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역대 두 번째로 공대 출신 교육부 장관을 뽑아놓고 제대로 활용조차 못해보는 게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박동휘 지식사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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