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반기문 "패권·기득권, 더는 안된다"

입력 2017-01-12 20:43   수정 2017-01-13 07:18

공항서 '대선 출사표'

반기문 "정권교체 아닌 정치교체 이뤄야"…공항서 문재인에 직격탄

사실상 대선 출사표…불붙은'대권 전쟁'

"분열된 나라 하나로 묶겠다" 대통합 메시지
편의점 생수 산 뒤 "시민과 대화할 것" 공항철도 탑승
서울역 환영 인파 "반기문" 연호…대선 출정식 방불
야당 대선주자들, 다음주부터 줄줄이 대권 도전 선언



[ 유승호 / 박종필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2일 “부의 양극화와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끝내고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5시25분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직후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는 데 제 한몸을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반 전 총장이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의 귀국을 계기로 여야 잠룡 간 경쟁에 더욱 불이 붙는 한편 정치세력 간 합종연횡 등 정계 개편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200자 원고지 17장 분량으로 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약 15분간 읽어내려갔다. ‘대선’이나 ‘출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반기문 전 총장은 “나라는 갈가리 찢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부정의로 얼룩져 있다”며 “그야말로 총체적 난관”이라고 국내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민생이 흔들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국민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많은 사람이 권력 의지가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남을 헐뜯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라면 난 권력 의지가 없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불사를 의지라면 얼마든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강력한 대선 경쟁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면 겨냥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 된다”며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사회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지 찾아야 한다”며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문 전 대표가 전날 충북도청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 또는 제3지대와 함께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간 일한 경험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는 “인류 평화와 약자들의 인권 보호, 가난한 나라의 개발, 기후변화 대처, 양성 평등을 위해 10년간 노력했다”며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고 성공한 나라는 왜 성공했는지, 실패한 나라는 왜 실패했는지 지켜봤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정세가 안보와 경제, 통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 북핵 대책을 수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을 향한 메시지도 내놓았다. 반 전 총장은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미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유엔 사무총장의 경험과 실력을 살려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광장의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광장에서 표출된 국민 여망을 잊으면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엔 반 전 총장 캠프 관계자를 비롯한 측근 인사들과 지지자, 취재진 등 수백명이 몰려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반 전 총장 지지자들은 연설 중간중간 “반기문”을 연호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들렀다가 승용차를 타고 사당동 자택으로 갔다. 당초 공항에서 자택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승용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가 다시 동선을 변경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시민과 같이 대화하고 호흡하려면 아무래도 다중이 활용하는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은 전철을 타러 이동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생수 두 병을 사고 전철표를 직접 구매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선 국군장병 라운지, 정보센터, 기념품 판매센터 등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인파가 몰려 곧장 주차장으로 가 승용차를 타고 자택으로 향했다.

반 전 총장이 무대에 오르면서 대선 시계는 더욱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오는 15일 광주에서 대선 출정식을 연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2일 대선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일 대선 도전을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조만간 출정식을 열 계획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25일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반 전 총장은 당분간 기존 정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채 독자 행보를 펼칠 것으로 정치권에선 보고 있다. 설 연휴 이후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중도·보수를 아우르는 ‘빅텐트’를 펼치려는 정계 개편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와 김종인 의원 등 민주당 비문(비문재인)계, 국민의당 일부 세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까지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설 연휴 직후 나올 여론조사 결과가 ‘반풍(潘風)’의 향방을 결정할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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