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보수는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가
엘리트주의·시장규제 등 보수주의의 뿌리, 일부 영국적 가치는 문제
결국 한국 경제에 필요한 건 경제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철학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한국의 보수가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집권의 길이 막막하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런 절박한 시기에 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가 영국의 보수를 주목하라면서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을 펴냈다. 이 책이 돋보이는 건 인간·정의·시장·국가에 대한 보수철학의 시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영국 보수당의 성공 역사를 검토한 점이다.
보수철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자유와 번영을 기약하는 일관된 원리원칙을 제공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경제·철학적 관심 때문이다. 보수철학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관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 분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재주·성실·지성 등 개인의 도덕·지적 능력의 정도에 따라 인간을 구분하는 것부터 영국의 보수철학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런 능력은 인간의 내면적 현상이기에 우열을 객관적으로 측정·구분하는 게 불가하다. 그래서 철학자도 짐꾼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자연적 평등’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게 애덤 스미스 전통의 자유주의였다. 법 앞의 평등은 그런 인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정의사회는 경제적으로는 잘남과 못남에 따라 소득·재산을 분배하는(능력주의) 사회이고, 정치적으로는 잘난 사람이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다. 그러나 객관적 측정·구분이 불가하다는 이유에서 도덕·지적 능력에 따른 분배원칙을 세울 수 없다는 건 250년 전 데이비드 흄이 명확히 했다. 시장 상황, 재산상속 등 개인행동과 무관한 요인에 의해 생긴 소득을 불로소득이라는 이유로 국고에 환수하는 정책도 보수주의의 능력주의에서 나온 반(反)시장정책이다.
이런 분배정의를 반대하는 게 자유철학이다. 차별 없는 보편적 행동규칙을 통해서 타인의 인격·자유·재산의 침해를 막는 게 자유주의 정의다. 이 정의 아래에서는 못난 사람도 부자가, 잘난 사람도 빈자가 될 수 있다. 엘리트주의도 문제다. 이는 플라톤의 철인(哲人) 정치 논리다. 지도층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최순실 사태’가 지도층의 도덕성이 깨진 결과라는 한국 보수의 진단은 그런 논리다. 잘난 사람이 지배하면 만사형통이라고 믿는 게 보수철학의 결함이다. 자유주의는 통치자가 철인이든 다수든 권력의 남·악용 우려 때문에 권력 제한에 역점을 둔다. 사회를 유기체로 해석하고 최상위의 공동체가 국가라고 하는 헤겔의 권위주의 국가관도 영국 보수의 심각한 문제다.
기업과 개인을 국가 목적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주의 때문이다. ‘규제 없는 시장’은 혼란을 야기한다는 보수시각도 문제다. 시장은 정부계획·규제 없이 빈곤·실업·위기 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자생적 질서’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보수의 입장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미국 중앙은행(Fed)의 방만한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라 시장 탓으로 착각할 우려가 있다.
이론을 무시·불신하고 경험만을 중시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이론 없이는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불가하고 ‘미래 전망적’ 경제·입법정책의 원칙도 세울 수 없다는 건 임마누엘 칸트 이래 확립된 인식이다. 자유이론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영국 보수당은 1960년대 경제자유의 확대로 ‘라인강의 기적’을 누리던 독일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부터 유행하던 계획경제를 답습했던 것이다. 이성을 불신하는 보수의 그런 답습은 치명적 모순이다. 하이에크가 비판하듯 계획경제는 이성의 자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지적하듯이 보수당은 필요하면 반대당의 정책을 빌렸다. 1950년대 이후 복지확대, 완전고용 정책, 국유화 등 노동당 노선을 답습했던 것이다. 1980년대에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자유주의에서 빌려서 노동·금융개혁을 단행했지만 복지, 주택, 교육 등의 분야에는 자유철학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못하고 반시장적 진로를 유지한 것도 보수적 한계다. ‘정책 빌려 쓰기’는 박 교수처럼 보수당의 성공 비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보수철학이 변화 방향을 안내할 원칙 없는 이념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에 긴요한 건 간섭·기회주의적 보수철학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과 경제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철학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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