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도주 우려 없는데 영장 청구 패착
동력 약해진 특검 "SK·롯데 등은 계속 수사"
[ 박한신 / 고윤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삼성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도주 우려가 없고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이 최순실 씨 측에 430억원대 뇌물을 주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영장을 청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작지 않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애초부터 무리한 영장”
법조계에서는 시간과 여론에 쫓긴 특검이 무리하게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패착’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특검이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지목한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은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뇌물공여자로 판단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게 악수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 측이 ‘강요에 의해 줬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처음부터 다툼의 여지가 큰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이 ‘검찰의 압수수색이 세 차례나 이뤄졌고 이 부회장이 출국금지돼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고 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구속영장을 신청한 게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검은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 당시 ‘말씀자료’에 나온 ‘임기 내 삼성 경영권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부정청탁의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뜻 없이 의례적으로 나눈 얘기였을 가능성이 커 경영권 승계의 대가를 직접 언급한 법적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구속=무죄’라는 인식이 강해진 점도 특검이 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촛불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은 특검의 파죽지세가 무리한 영장 청구를 불러온 것 같다”고 말했다.
◆SK·CJ 등으로 수사 확대할 듯
이 부회장의 신병확보를 박 대통령 뇌물죄를 겨냥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았던 특검은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특검은 지난달 21일 수사 시작을 알리는 현판식과 동시에 국민연금공단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수사에 화력을 집중해왔다. 이 부회장이 최씨 측에 거액의 뇌물을 줬고 박 대통령은 최씨와 ‘경제적 공동체’라는 점을 특검이 규명하려 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특검은 앞으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수사하면서 SK와 롯데, CJ 등 다른 ‘부정청탁’ 의혹 기업으로 전선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18일 브리핑에서 “이 부회장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대기업을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영장 기각이 곧 무죄는 아니다”며 “특검이 현재의 방향대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이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영향을 줄지도 관심을 모은다. 아직까지는 영장 기각이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은 지나치다는 분석이 많다. 영장 기각은 원칙적으로 유·무죄와 관련이 없는 만큼 헌재가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개인에 관한 것일 뿐”이라며 “대통령 탄핵심판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이 선택한 ‘신중론’이 헌재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박한신/고윤상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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