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은 정치·여론재판 아냐…독립된 규범적 심판"
"국회 6일 만에 탄핵 의결, 美닉슨 탄핵절차는 1년6개월 걸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촛불은 국회를 강하게 추동했다. 그 결과가 탄핵소추안의 압도적 가결(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 찬성)이었다. 탄핵의결서는 두 군데로 향했다. 청와대로 간 의결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재판소로 향한 의결서는 탄핵심판 절차를 밟고 있다.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우선 합의된 지점.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가 실재(實在)했으며 헌정사에 큰 오점이 됐다는 것이다.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남아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방식’대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헌법학자들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탄핵심판은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견해와 “탄핵심판은 정치 재판이나 여론 재판이 아니다”라는 견해가 맞부딪쳤다. 후자에 속한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소수파였다. 핵심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중앙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정치적 압력이나 여론몰이가 헌재의 객관적이고 독립된 규범적 심판기능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존중돼야 하나 ‘희망’과 ‘법’을 혼동해선 곤란하다”고도 했다.
- 탄핵심판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민심이든 반대하는 태극기 민심이든 그건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일 뿐이다. 주권 행사는 아니란 뜻이다. 주권 행사(대통령 선출)는 4년 전 헌법과 선거 절차에 따라 했다. 엄밀히 말해 ‘촛불 민심이 곧 국민의 주권 행사’라는 논리는 착각이다. 헌법 제1조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잘못 읽은 것이다.”
-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민심도 정치권도 언론도 흥분 상태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봐야 한다. 이미 탄핵소추가 됐고 헌재의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다. 이젠 차분하게 기다릴 때다. 헌법이 왜 존재하는가? 공동체의 소중한 기본가치를 ‘순간의 격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나.”
- 그러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대중의 정서다.
“분노할 수 있다.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헌법상 정당한 ‘언론 자유의 행사’다. 그 자체는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 다만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다고 해서 엉터리로 치부하거나 헌재에 협박을 가하는 수준이 돼선 안 된다. 우리 헌법에는 언론의 자유 못지않게 중요한 ‘재판의 독립성’이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두 가치가 공존하는 방법이 있을까.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깨끗이 승복하겠다고 선언하자. 지금 상태로는 탄핵되면 태극기 민심이, 기각되면 촛불 민심이 불복할 것이다. 헌재 재판 절차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하고, 그 결과를 유·불리와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헌법 질서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방법이다.”
- 국민 다수가 탄핵을 원하면 어떻게 하나.
“탄핵심판은 법적 책임을 가리는 규범적 심판 절차다. ‘중대한 헌법 위반’에 해당돼야 탄핵할 수 있다. 헌재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밝힌 원칙이다. 확인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설령 ‘국민들이 원하는 재판 결과’와 거리가 있다 해도 말이다.”
그는 탄핵심판이 정치 재판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점, 국민이 주권을 행사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시스템’을 함부로 허물어뜨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 현 상황을 ‘입헌민주주의의 위기’로 규정한 이유는.
“상황 논리에 따라 당장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해서 기본적 가치나 정해진 룰을 어겨선 곤란하다. 한 마디로 ‘희망’과 ‘법’을 혼동하면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몰라도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대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든 박근혜 대통령이든 탄핵은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유 자체가 다르다.
“물론 그렇다. 핵심은,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나 여론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행위의 ‘사실인정’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이 ‘사안의 중대성’이다. 이 두 단계를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
- 특히 탄핵 과정과 절차에 대해 문제제기 했는데.
“국회법상 형식적 합법성은 갖췄을지 모르나, 헌법 제65조가 요구하는 절차적 정당성(탄핵소추 사유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위배’로 명시)은 미흡했다고 본다. 작년 12월3일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6일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 없이 곧바로 의결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차원 의견수렴 절차는 전혀 없었다. 증거 자료도 검찰 공소장과 언론 보도 정도다. 대통령 권한 정지라는 탄핵소추의 엄청난 법적 효과에 비춰볼 때 너무나 부실한 절차다.”
- 탄핵 인용에 손을 들어준 학자들도 이 부분은 문제라고 짚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각 때도 똑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차제에 국회법을 개정해 탄핵소추 절차에 대한 합리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사례를 보자.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당시 1년간 사실 조사, 6개월간 소추사유 확인 및 인정 절차를 거쳤다. 6일과 1년6개월, 차이가 크다.”
- 박 대통령의 경우 남은 임기가 1년 남짓 뿐이라는 차이가 있다.
“사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의 경우 탄핵소추 돼도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탄핵소추 되면 정부 기능이 상당 부분 마비된다. 불가피한 국정공백 때문에 이 상황에선 헌재가 빨리 결론내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재판의 신속성에 선행하는 제1원칙은 ‘사실에 기초한 재판의 공정성’이다.”
이 교수는 언론 역시 탄핵심판 결정 시기와 인용·기각 여부를 예단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또 탄핵심판의 객관성과 신속성 확보를 위해 “대통령도 헌재 요구에 적극 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결국 궁금한 건 언제와 어떻게, 이 두 가지다.
“탄핵이 인용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지만 함부로 전망하기 어렵다. 사실인정 여부에 따라 기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예단을 하면 안 된다. 지금 헌재가 유례없이 한 주에 3차례씩 변론을 열고 있다. 박한철 소장 임기인 1월 말 안에 결정이 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 왜 그런가.
“헌재가 아니라 국회를 탓해야 한다. 소추사유가 너무 많다. ‘세월호 7시간’까지 들어가는 게 전략적으로 맞나? 헌재가 10개 이상 소추사유 가운데 몇 가지만 선별해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소추사유 중 몇 가지만 인정돼도 탄핵 인용은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상으로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 대통령의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앞서 언급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어느 쪽이든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려면 대통령 측도 헌재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지연작전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스스로 진위를 밝히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영상=문승호 한경닷컴 기자 w_moon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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