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트럼프 시대] "한국·미국 간 통상·안보는 한 묶음…'통큰 협력' 시그널 보내 윈윈게임 해야"

입력 2017-01-19 19:12  

한경·KOTRA 공동기획
(5) 한국의 통상 대응 전략은

트럼프 협상기법 분석…국제협상 전문가 안세영 서강대 교수

미국 통상정책 기조 변화…다자간 협정·지역주의에 부정적
'코리안 스마일' 안 통해…양자협상체제로 신속히 전환을

트럼프, 거친 상대에 더 거칠게 반격하는 '고도의 협상가'
중국과 치열한 무역전쟁 예고…짖기는 하되 물지 않을 것



[ 이상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 전혀 다른 지도자입니다. 그와 협상하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국제통상협상 전문가인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상대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끊임없이 양보를 요구하는 ‘하드 포지션 협상가’”라며 “트럼프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이나 말은 협상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려면 ‘통 크게 미국에 협력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뒤 상대방에 내주는 만큼 우리도 챙겨오는 상호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옛 통상산업부에서 20여년간 근무하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과 통상 협상을 실전으로 경험했다. 최근 발간한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한국경제신문 펴냄)를 포함해 《CEO(최고경영자)는 낙타와도 협상한다》 등 협상 분야 관련 책을 다섯 권 썼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외협상 자문을 담당하는 통상교섭민간자문회의 위원장도 맡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막말이나 기이한 행동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루비오(마코 루비오 전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는 돼지같이 땀을 뻘뻘 흘린다!’고 하는 장면을 TV로 보며 저도 처음엔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2차 TV 토론에선 클린턴이 발언할 때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무대를 왔다 갔다 하고 손가락질을 했고요.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겠지만, 이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입니다.”

▷모두 계획된 행동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협상이나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손짓, 발짓 같은 몸짓으로 전달되지요. 클린턴의 발언을 듣던 청중의 관심이 30% 정도 트럼프에게 분산됐다고 합니다. 막말을 하는 것도 그가 타깃으로 하는 분노한 미국 백인 노동자나 서민들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말’을 하는 것으로 비칠 것입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자주 쓰는 협상 전략이 있을 텐데요.

“그가 가장 강조하는 협상 전략은 ‘파이트 백(fight-back)’입니다. 거칠게 받아치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CEO는 트럼프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보잉 비행기를 중국에 팔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트럼프는 트위터에 보잉의 대통령 전용기값이 비싸다며 ‘주문 취소’라고 적었죠. 50년간 전용기를 공급해 온 보잉이 깜짝 놀라서 바짝 엎드렸습니다. 그다음으로 그가 즐기는 전략은 지렛대를 만들어 협상판 자체를 뒤흔드는 겁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받아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어대니 중국이 열을 받아 난리잖습니까. 협상에선 화내면 불리합니다. 미끼를 흔들어서 약을 올리고 판을 깰 수 있다고 한 다음에 협상을 시작해서 원하는 걸 얻는 전략입니다.”

▷중국과 한판 싸움을 벼르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사자라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호랑이입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상당한 상처를 내고 싸울 겁니다. 양쪽은 큰 통상전쟁을 일으키겠지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데,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곧 일자리 도둑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는 또 중국에 그동안 너그러웠던 탓에 미국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양쪽은 치킨게임을 벌일 것입니다.”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45%를 얘기했지만 사실 반덤핑 등으로 중국산 제품에 15% 정도 관세만 매겨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8% 줄어든다고 합니다. 중국엔 큰 타격이죠. 문제는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보복을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중국이 미국에 보복한다면 그 대상은 중국에 투자한 제너럴모터스(GM)나 애플 같은 회사가 될 겁니다. 하지만 ‘짖기는 하되 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파국으로 치달아가지 않고 어느 선에서 타협할 걸로 봅니다.”

▷한국에 어떤 통상 정책을 펼칠까요.

“가장 큰 변화는 미국 통상정책의 기조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다자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다자주의나 지역주의에서 양자 통상협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보는 중국, 멕시코 같은 나라를 후려치겠다는 거지요. 한·미 FTA가 발효된 뒤 3년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132억달러에서 283억달러(상품 기준)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니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내정자를 수장으로 하는 트럼프 군단(軍團)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가 미국이 맺은 FTA 중 가장 모범적인 FTA라고 자랑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한·미 FTA는 10만개의 일자리를 뺏어간 도둑(job-killer)이라고 했으니 한·미 FTA에 대해서도 걸고넘어질 것입니다.”

▷대응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1980년대 워싱턴 통상관료 사이에선 ‘일본인의 미소’라는 비아냥대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일본 통상관료들이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피한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통 큰 협상을 중시합니다. 일본이 했던 것처럼 동양적인 태도로 ‘한국인의 미소’라는 비아냥을 들어선 일이 안 됩니다. ‘통 크게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소프트 시그널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진지하게 협상테이블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해야죠.”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요.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서 셰일오일·가스를 수입하겠다고 할 수도 있겠죠. 또 우리의 통상 협상체제를 지금까지의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지역주의에서 양자 간 통상 협상 체제로 빨리 바꿔야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 점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한국은 대미 통상협상의 특징이 ‘안보 통상’입니다. 군사동맹인 미국과 주한미군 군사비 분담 같은 안보 이슈와 통상 이슈를 섞어서 거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협상이 트럼프 정부와의 거래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트럼프 눈치를 보며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 약속을 줄줄이 내놓고 있습니다.

“일단은 트럼프가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언제 포드, GM 등 기업 하나하나를 위협해 일자리를 되찾아 올까요. 결국 이를 미국의 제도와 정책으로 만들어야 하고,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많은 의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부담스러운 선물을 하나 받았어요. 매우 낮은 실업률(4.7%)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건 거의 완전 고용이나 같거든요. 그러니 실업률이 더 내려가긴 힘들고 오히려 올라갈 확률이 커요. 미국 전체의 실업률이 높아지면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좁아질 것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미국과의 협상에서 멕시코와 캐나다가 상당 부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세 나라 사이의 관세장벽을 없앤다는 애초의 정신이 퇴색하고 ‘반쪽짜리 NAFTA’가 될 겁니다. TPP는 일본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 2년간은 선반 위에 올려놓아야 할 것 같아요. 트럼프가 의욕적으로 여러 가지 통상정책을 써보고 ‘구관이 명관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면 TPP를 선반에서 꺼내서 다시 추진할 것입니다.”

■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펴냄>

안세영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에 맞춰 이달 초 펴낸 책. 자신을 ‘위대한 협상가’라고 표현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협상 전략을 분석했다.

직설적인 거친 말, 날카로운 질문을 어수선한 답변으로 피해가는 교활함, 네 번이나 파산하고도 살아남은 경력 등 트럼프의 다양한 면모를 협상이론으로 쉽게 설명했다. 한국이 트럼프 정부와 앞으로 어떻게 협상해야 할지를 조언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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