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1987년 ~ 1993년) 5년
■ 기억해 주세요^^
서울 올림픽은 진정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화합한 올림픽이었어요. 바로 전에 있었던 미국 LA 올림픽이나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은 자유 진영 또는 공산 진영만 참가한 반쪽 올림픽이었죠.
다수당 못된 민자당
16년 만에 다시 실시된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노태우입니다. 직접 선거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군사 정권을 청산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동기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국민들의 불만은 1988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바로 드러났습니다. 집권 여당인 민정당은 전체 국회의원 의석 299석 중 125석을 얻었을 뿐입니다. 과반수인 149석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였지요. 야당은 김대중의 평민당,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 순으로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여당의 수가 야당보다 적은 여소야대 현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여소야대의 국회가 되면 대통령은 정국을 이끌어나가는 데 많은 문제를 겪게 됩니다. 대통령의 편에서 일하는 여당의 힘이 약하면 대통령이 내놓은 의견이 야당의 반대로 발목을 잡히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노태우 대통령은 이 어려운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 야당과 힘을 합하기로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초 김영삼과 김종필과 교섭하여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을 합해 민자당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른바 3당 합작을 이룬 것이지요. 이로써 여대야소의 안정적인 정국을 만들어낸 노태우 정부는 5년 동안 많은 일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세계의 축제된 88올림픽…한국 급성장
그 첫째는 바로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입니다. 서울 올림픽에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큰 기대와 관심을 가졌습니다. 서울 올림픽 바로 전에 있었던 미국 LA 올림픽이나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 둘 다 자유 진영 또는 공산 진영만 참가한 반쪽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올림픽에 와서 12년 만에 전 세계 사람들이 화합하는 올림픽이 되었던 것이지요. 전 세계 160개국에서 1만3600여 명이 참가한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4위를 차지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성큼 내딛게 되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 일어난 또 다른 큰 사건은 공산권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긴밀한 북방 외교를 펼쳤지요. 1988년 7월 중공(중국 공산당)을 중국이라고 공식 호칭을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고 1989년 2월에는 공산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공식 수교를 맺었습니다. 2월 27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여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고 우리나라의 북방 정책에 미국도 공식적으로 지지했습니다.
1991년 크리스마스에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고르바초프의 해체 선언 연설과 함께 붉은 광장에 게양되어 있던 소련의 국기를 내리고 러시아 삼색기를 올렸습니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소련은 해체되고 곧바로 소련의 15개 공화국이 독립하였지요. 이렇게 소련은 붕괴되고 냉전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의 원한을 접어두고 러시아와 수교를 했습니다. 또 1992년 8월에는 중국과도 국교를 맺었습니다. 이로써 82년 만에 중국과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남북대화 … 이산가족 왕래·금강산 개발
남북 대화도 원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988년 7월 남북 동포 교류 추진 등 대북 정책 6개항 특별 선언인 '7·7선언'을 발표하였으며 1989년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제시하여 새로운 통일 논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듬해인 1990년 1월 연두 기자 회견에서 연세가 높은 이산 가족 왕래와 금강산 공동 개발 등을 제의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그런 대통령이 있었는지 관심 없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러나 88 서울 올림픽을 무사히 치러서 우리나라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그 무렵의 일입니다. 또 지금 무역과 외교 등에서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는 중국과의 수교도 그때 이뤄졌습니다.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는 물론 동구권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러니 노태우 정부 때는 대한민국이 세계화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어나간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황인희 / 역사칼럼니스트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