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려니 경제성 없고, 손 떼려니 후환 두렵고

입력 2017-01-20 18:52   수정 2017-01-22 10:39

미국산 원유·가스 수입 늘리라는데…정유·가스사들의 딜레마

운임 감안 땐 중동산보다 비싸고 파나마 통과 못하면 오래 걸려
'개점휴업' LNG발전소 늘고 남는 물량 팔 수도 없어 '난색'



[ 주용석 기자 ] 트럼프 정부가 20일 출범하면서 ‘미국산 원유, 가스 도입을 늘리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정유, 가스회사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 부족과 규제 탓에 미국산 원유, 가스 도입을 늘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1, 2위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사인 SK가스와 E1은 “관심은 있지만 당장은 미국산 LPG를 직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산 LPG 도입을 망설이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현재 미국산 LPG 가격은 t당 440달러로 중동산(465달러)보다 20달러가량 싸다. 하지만 운임을 감안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운송비는 중동산이 t당 35~40달러 수준인 반면 미국산은 70~80달러다. 운송기간도 중동에서 들여오면 20~25일 걸리지만 미국에서 들여올 땐 파나마 운하를 거칠 경우 40~45일, 파나마 운하를 거치지 않으면 50일 이상 소요된다. 업계 관계자는 “운송비를 감안할 때 미국산 LPG 가격이 중동산보다 15~20% 싸야 경제성이 생기는데 가격 차이가 5% 정도밖에 안돼 경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12월 41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본토 원유(셰일오일)를 수입한 GS칼텍스도 아직까지 확정된 추가 도입 계획이 없다. 당시 도입 물량도 총 200만배럴로 지난해 이 회사 전체 수입물량(2억6800만배럴)의 1%가 채 안됐다. 일종의 '시험도입' 성격이었을 뿐 본격적인 미국산 원유 수입은 아니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석유개발 본부를 미국 휴스턴으로 이전했지만 미국산 원유 직수입에는 소극적이다.

역시 경제성이 가장 큰 문제다. 셰일오일 덕분에 미국산 원유가 중동산보다 가격이 낮아지긴 했지만 가격 차는 배럴당 2~3달러에 불과하다. 운송비를 감안하면 미국산의 매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유조선은 보통 한 번에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인데 이 정도 규모의 선박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 곧바로 원유를 실어올 수 있으면 그나마 낫지만 서부에는 원유 수출 시설이 없다. 이래저래 미국 본토 원유 수입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가스공사, SK E&S, GS EPS는 3~5년 전 셰일가스 붐이 일었을 때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도입계약을 맺었고 이 물량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가스공사를 제외한 민간 업체들은 미국산 LNG 추가 도입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LNG 발전소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노는 발전소’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LNG 도입을 더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법상 LNG 발전사가 직도입한 LNG는 자가 소비만 가능하다. 물량이 남아도 다른 회사에 팔 수 없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트럼프 시대에 불거질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 가스 수입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가스업계 사장들을 만나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 등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고, 유일호 부총리도 이달 초 셰일가스 수입 등을 통해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내정자가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중국 일본 독일 한국 등은 매년 상당한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를 올리면서도 정작 LNG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말한 영향이 컸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동에 치우친 에너지 도입처를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82%에 달한다.

기업들은 정부가 미국산 원유와 가스 도입을 늘리려면 중동 외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올 때 늘어난 운송비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민간 기업이 직도입한 LNG 일부를 다른 기업에 팔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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