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 대통령에까지 침투한 좌파적 반세계화 주장

입력 2017-01-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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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엉터리 경제학이 넘쳐난다. 그게 민주주의 위기 본질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업가 출신 아웃사이더의 지난 20일 취임식 연설은 극명한 이중적 평가를 낳았다. ‘기득권 타파’로 시작하고 교육개혁으로 이어간 연설은 고무적이었다. 워싱턴 정가를 직접 겨냥했다는 면에서 용기 있는 직시였고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게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소수 사람이 정부 이익을 가로채고 국민들은 그 비용을 떠안았다”며 기존 정치 세력을 공격했다. 그것의 극복을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교육개혁을 제시한 점도 바른 진단이다. 트럼프는 범죄와 마약이 미국 청년들과 미국의 잠재력을 훔쳐가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청난 돈이 교육에 투입되지만 지식은 없는 교육을 받고 있다는 비판은 한국에서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일갈이기도 했다.

적잖은 아쉬움도 남겼다. ‘미국 우선주의’는 철학적 빈곤을 드러냈다. 자유와 평화를 말하던 미국 전임 대통령들의 취임사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더 노골화했다. 그는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미국의 부(富), 힘, 자신감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는 제로섬적 무역관과 이분법적 세계관을 드러냈다. 당연히 미국 우선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말은 미국 우선주의이지만 내용은 보호주의로 나아가지 않으리라는 어떤 전망도 기대하기 어려운 연설이었다. 모든 무역, 세금, 이민 정책, 외교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은 미국 노동자와 미국 가정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는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두 가지 규칙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인식은 경제적 무지요, 좌익적 편견에 불과하다. 미국의 일자리를 말하지만, 미국 실업률은 4.7%로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다. 자동차 등 몇몇 제조산업의 사양화를 미국의 쇠락으로 등치시키는 건 오판이다. 미국의 금융산업과 서비스산업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 것은 가치사슬이 재편된 그런 거대한 흐름의 결과였다. 세계사적 변화 과정에서 미국의 주력 산업은 자연스럽게 제조업이 아니라 금융과 서비스산업으로 이전했을 뿐이다. 세계는 그렇게 진보해 왔고 오늘도 진보하고 있다. 포퓰리즘이나 좌익적 세계관은 경제적 거래를 단순한 착취, 혹은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과정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보호무역으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물론 지구촌은 여전히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화가 넘쳐서가 아니라 세계화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많다고 고속도로를 없앨 수 없는 것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힘을 강조했다. 이 역시 방향 착오다. 미국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바로 개방과 포용의 힘이다. 중국과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을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가치의 장으로 불러내야 마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 대통령마저 부분적이나마 좌익적 세계관에 물든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경제적 무지와 오해는 한국 정치권에도 만연해 있다. 그것이 걱정이다. 한국 정치권, 그리고 일부 대선주자가 발표하는 경제적 약속들을 보면 시장은 착취 제도이거나 그것과 비슷한 마이너스 거래라는 생각이 강하게 깔려 있다. 세금을 더 걷고, 기업에 고용을 명령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제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경제적 무지와 다름이 없으며, 타인의 것에 대한 은밀한 약탈 욕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종종 잊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을 세계는 숨죽여 쳐다보고 있다. 남중국해와 북한 핵 문제는 정치적 갈등, 혹은 약한 형태의 군사적 충돌까지 세계인의 시야로 잡아당기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과시욕구에 불타는 중국을 다뤄야 하는 이중의 상황 속에서 트럼프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국 정치권이 정신을 번쩍 차려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한 정당은 권력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현기증 속에, 다른 정당은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정신 착란적 이상 상태에 빠져 있다. 더구나 트럼프 시대에 발을 맞출 대통령부터 부재 상태다. 그것이 지금 한국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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