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균 국제부 기자)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조립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22일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일요일인 이날 언론에 70억달러(약 8조2320억원) 이상을 투자해 디스플레이 생산공장을 건설하겠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에서 약 3만~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습니다.
폭스콘의 투자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통상 부문에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직후 나온 것이어서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언론들은 “대만의 간판 기업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동안 폭스콘은 미국에 투자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압박에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중국 정부는 궈 회장에게 미국 내 아이폰 조립공장 확장 계획에 대한 우려를 표시해 왔습니다. 궈 회장은 이에 대해 “중국 내 투자를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궈 회장은 지난 20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았지만 중국 정부를 의식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궈 회장이 이날 전격적으로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게 된 것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의 ‘가벼운 입’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손 사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미국 투자를 약속하는 자리에서 소프트뱅크와 폭스콘의 로고와 함께 ‘500억달러+70억달러’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폭스콘은 “미국 사업 확장을 위한 예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궈 회장은 이날 발표 자리에서 언론들에 뒷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손 사장은 정말 좋은 친구다. 손 사장이 나에게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물었다. 난 손 사장에게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TV 시장이지만 패널 제조공장은 없다. 디스플레이 생산공장 건설에 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생각이다. 그러면 3만~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것이 사적인 대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그 얘기가 언론에 유출됐다. 이런 계획은 약속이 아니라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궈 회장의 설명을 듣고 보면 손 사장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성급하게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투자 계획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친구에게 한 사적인 얘기가 언론에 알려졌고, 이를 전해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폭스콘도 미국 투자에 합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을텐데 이를 번복하면 향후 통상 보복을 당할 수도 있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투자 계획을 내놓게 된 것이라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죠.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 얘기는 안하는 게 낫다는 것을 궈 회장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끝) / kdg@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