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내 미국 재정으로 공사 착수…차후 멕시코가 비용 상환할 것"
이민자 보호도시에 지원 중단도
트럼프 도발에 멕시코는 '발끈' "장벽 건설 유감…비용 안낼 것"
[ 김동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건설 비용은 전적으로 멕시코가 부담할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가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에 돈을 낼 일은 없다”고 받아쳤다. 멕시코는 오는 3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멕시코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트럼프의 공세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판 만리장성 현실로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국토안보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불법 이민자를 체포하지 않는 ‘이민자 보호도시’에 연방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행정명령도 발동했다. 멕시코 등을 겨냥한 초강경 이민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나선 것이다.
미 정부는 수개월 안에 장벽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장벽 건설 비용은 누차 말했던 것처럼 멕시코가 부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미국이 재정을 투입해 장벽 공사를 한 뒤 멕시코가 추후에 비용을 상환하는 방식이 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트럼프의 압박에 멕시코는 발끈했다. 니에토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 전역을 대상으로 한 방송 담화에서 “미국이 장벽을 세우기로 한 것에 유감을 표하고 이에 반대한다”며 “멕시코는 장벽 건설 비용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니에토 대통령은 항의의 표시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위해 31일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불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나섰다. 멕시코 정부 고위관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의 거친 공세에 멕시코 정부가 지나치게 유약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멕시코 내 비판 여론이 거세진 데 따른 조치”라고 해석했다. 멕시코 정부는 그동안 트럼프의 ‘선거용 발언’으로 보고 대응을 자제했지만 트럼프가 실제 행동에 나선 이상 정면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운(戰雲) 감도는 국경지대
미국과 멕시코 간 극한대립이 현실화하면서 멕시코와 인접한 국경지대 미국 도시에서도 장벽 건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텍사스 국경지대 도시들에서 장벽 건설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멕시코와의 교류로 이득을 보는 관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구 27만명의 소도시 라레도의 피트 세인즈 시장은 “트럼프가 멕시코에 대한 공세 수위를 좀 낮추길 바란다”고 했고, 인구 18만4000명인 브라운스빌의 존 빌라리얼 시의원도 “지역민 중에서 장벽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의 멕시코 장벽 건설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멕시코 시멘트 회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50억~310억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경 장벽 건설 공사가 본격화되면 주재료인 시멘트 수요가 늘어 자연스럽게 중남미 최대 시멘트 생산업체인 멕시코 세멕스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4만명 이상의 멕시코 인력이 건설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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