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설 명절을 앞뒀던 지난 26일 회사원 전인영씨(29)는 크게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고향인 대구에 가는 것은 항상 기쁜 일이지만 이번엔 걱정이 앞선다고 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첫 명절이어서 친척들과 다툴 거 같아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그의 촛불집회 참가 행적을 놓고 가족 간에 한바탕 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친척 어른들이 그의 부모에게 “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냐, 인영이 촛불집회 그만 나가게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고 합니다. 전씨는 “심각하게 해외여행을 갈까 고민하다 부모님 만류에 그만뒀다”며 “명절에 기껏 모여 싸움만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된 정국이 집안 갈등으로까지 이어진 가족들이 많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부모세대와 탄핵을 찬성하는 자녀세대 간의 충돌입니다. 명절 단골 이야기 소재인 ‘정치토크’가 어느 때보다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만 합니다.
예고된 분란을 피해 아예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원생 한모씨(32)씨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부터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계속 싸웠다”며 “논문 준비가 바쁘단 핑계로 올해 설엔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3이니 독서실에 가있겠다’라거나 ‘대화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영화표를 예매해뒀다’는 글들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즐거운 명절에 가족 내 갈등을 키우는 대화 소재는 정치 이야기 뿐만 아닙니다. 자녀 세대의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청년 실업율이 10%에 육박한 데다 자발적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족’이 늘어나고 있어 세대 간 갈등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독신주의자 딸이 있는 김모씨(67)는 “딸이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을 안했는데 기껏 모인 가족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워 그냥 결혼 얘기 자체를 안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논쟁이나 일방적인 조언보단 가족이 한 데 모이는 명절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통령 탄핵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한 논쟁을 넘어선 세대 간 가치관 다툼”이라며 “억지로 남을 바꾸려하기 보단 상대방의 가치관과 철학을 존중해주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끝) /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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