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아라 기자 ] "진짜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많습니다."
2년째 대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여대생 윤지원 씨(가명·27)는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윤 씨는 외국어 자격증 보유, 인턴십 경험 등 나름대로 조건은 갖췄다. 하지만 올 상반기 공채를 앞두고 자기소개서와 인·적성시험 준비에 만전을 기할 생각으로 명절에 쉬는 걸 포기했다.
이미 몇 번씩 졸업유예를 한 데다 '취업 재수'에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솔직히 취직 여부를 묻는 친·인척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참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고, 윤 씨는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았다. 명문대에 입학해 한 시름 놓았다. 그런데 이제는 취업이 발목을 잡는다. 윤 씨는 더 이상 졸업유예를 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졸업 전 취업시 '취업계'를 제출해 출석을 인정받아 학점을 취득하는 관행을 법 위반 사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윤 씨처럼 상반기 공채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상황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작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8%였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기업들이 뽑는 규모 자체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경기침체와 산업 구조조정은 취업문을 더 좁게 만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후폭풍'까지 채용 시장에 불어닥쳤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됐다는 혐의를 받은 대기업 총수들이 국회로, 검찰로, 특검으로 불려다닌 탓이다.
통상 기업들의 신년 계획은 전년도 하반기에 수립된다. 그러나 올해는 '최순실 사태 여파'로 대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조사 받거나 청문회에 출석하면서 조직·인사 개편이 훌쩍 뒤로 밀렸다. 특히 올 상반기 채용 일정과 규모 등 신규채용 관련 계획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실상 '올스톱'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의 공채 일정은 매년 2~3월께부터 진행된다. 지금 쯤이면 계획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면서 "올해는 외부 요인 때문에 채용 계획 자체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기업들이 먼저 채용에 나서야 이후 중소기업도 일정을 세워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채용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종의 '도미노 효과'인 셈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취준생들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명절 연휴를 반납하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정작 기업들의 상반기 공채 계획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취준생 입장에선 가뜩이나 다양해진 채용전형이 부담스럽다. 빨리 관련 정보를 알고 대비해야 하는데 공채 일정이 몰리는 3월이 다 되어서야 채용계획이 갑자기 나오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최근 채용 시장은 학벌·학점·어학능력뿐 아니라 스펙초월 채용 등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채용 정보마저 늦게 나오면 취준생들은 준비할 시간이 태부족해진다. 부족한 시간에 반비례해 부담감은 커진다.
설에 쉬지도 못하고 상반기 채용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을 생각해서라도 채용 일정이 빨리 확정, 공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졸업유예와 취업 재수가 한 해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 졸업예정자들은 선배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이른바 '취업 적체'다.
취업이 늦어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연애도, 결혼도 마음 편하게 못하는 게 현실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들을 전전하며 '대입'이란 지상과제를 마쳤더니 '취업'이란 더 큰 짐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2017년 정유년 설은, 이래저래 참 가혹한 명절이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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