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두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영장이 기각됐으니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이후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특검 방침을 감안하면 고민은 3주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특검의 삼성 보완조사 폭으로 볼 때 재청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발독재 시절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을 앞장서 끊어야 할 글로벌 기업 삼성이 총수의 사익 때문에 구태를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 영장 재청구가 특검 소관인 것은 물론이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을 법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거나 구속해야 할 새로운 혐의가 밝혀진다면 재청구할 일이다.
다만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에 여론이 고려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검찰의 다른 수사들에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법원에 공을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 처지에선 ‘여론은 우리 편이고, 법원이 두 번 연속 이 부회장 영장을 기각하긴 부담스러울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비난은 특검이 아니라 법원으로 향할 것이고, 법원도 법리만으로 심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사법 시스템이 여론의 눈치를 보는 위험한 상황이다. 첫 번째 영장 기각 때도 심사를 한 조의연 부장판사 개인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다. ‘삼성 법무팀행(行) 예약’ ‘아들이 삼성 취업’ 같은 근거 없는 이야기도 나왔다. 법리와 판결로 말하는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은 법관 양심에 따른 판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피해는 결국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돌아간다.
특검이 법원에 여론이라는 부담을 떠넘기듯 영장을 재청구한다면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을 고착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속은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있을 때로 최소화하는 게 영장실질심사 제도의 원칙이다. 유죄 판결을 받기 전 시민의 자유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조 부장판사 또한 이 부회장의 유죄 판결을 막은 게 아니라 유·무죄 판단 전에 자유권을 제한할 이유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검이 아직 잘 가다듬어 나가야 하는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한신 법조팀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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