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극복 '경제사령탑' 강봉균 전 장관 별세

입력 2017-02-01 03:42  

기획원서 공직 시작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안…"경제 운용 골격 짰다" 자부심

대통령 임명장만 일곱 번
YS 정권서 첫 장관 올라…DJ 정권 땐 환란 해결 공신

경제관료 출신 3선 의원
은퇴 후 건전재정포럼 대표 맡아 반포퓰리즘 운동 최일선에



[ 이상열 기자 ]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이끈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31일 별세했다. 작년 4·13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최근까지도 경제 원로로서 경제 난국을 헤쳐나갈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췌장암이 재발해 건강 상태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74세.

강 전 장관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국회에서도 3선 의원(16, 17, 18대)을 지내 경제 관료 출신으론 드물게 정·관계를 폭넓게 섭렵한 인물이다. 강경식·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기획원이 배출한 대표 경제 관료로 꼽힌다. 풍부한 아이디어와 비상한 기획력으로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꾀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의 첫 직업은 교사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고창 등지에서 3년여간 교편을 잡았다. 교원 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삼수 끝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69년 행정고시(6회)에 합격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고시 동기다.

강 전 장관은 경제기획원 기획담당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3~7차) 입안에 참여했다. 1985년부터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을 4년, 1990년부터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4년간 맡았던 그는 생전 “한국 경제 운용의 골격을 짰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강 전 장관이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할 당시 그 밑에서 종합기획과장으로 호흡을 맞춘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국회의 대정부질문 답변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하면 당시 강 차관보 본인이 직접 새벽 1~2시까지 자료를 수정하는 등 정책의 완벽성을 추구했다”고 회고했다.

강 전 장관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다가 차관보 자리에서 밀려났다. ‘관치금융 폐지를 개혁 과제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당시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과 마찰을 빚은 탓이다.

하지만 6개월여 만에 노동부 차관으로 다시 발탁된 뒤 관료로서 승승장구한다.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차관급)을 거쳐 1996년 정보통신부에서 첫 장관직을 수행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전 정권 사람이었음에도 그를 ‘위기의 해결사’로 기용했다. 청와대 정책수석과 경제수석을 거쳐 ‘경제 사령탑’인 재정경제부 장관에 올랐다. 관료 생활을 하면서 한두 번 받기 힘들다는 대통령 임명장을 일곱 번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4월에는 관료 생활을 접고 경기 분당에서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정치 입문 계기에 대해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공이 없었음에도 청와대 수석 때 전적인 신임을 받은 것에 대해 빚 갚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2003년 군산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16대)에 당선돼 정계에 발을 디딘 이후 17, 18대에서도 내리 당선돼 노무현 정부 시절 집권여당(열린우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당론에는 어긋났으나 소신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점이 공천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2년 9월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맞서 전직 장·차관급 고위 관료 100명이 참여한 ‘건전재정포럼’의 총괄대표를 맡아 설립을 주도했다.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로 재정수입 기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국가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모임이다. 지난해 4·13 총선에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기업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형 양적 완화’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 씨(71)와 아들 문선씨(43), 딸 보영씨(42)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장지는 군산시 옥구읍 가족묘.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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