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생각의 힘 키우고 싶다면 빠른 검색보다 느린 사색을

입력 2017-02-02 17:24   수정 2017-02-03 06:0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오재섭 < 대전 한밭도서관장 >



바야흐로 ‘검색(檢索)’이라는 키워드가 이 시대를 점령한 듯하다. 도서관에 가면 ‘사서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문구가 이용자를 반기고 있지만, 도서관에서조차 사서가 아니라 인터넷에 물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 한 문장의 글을 마음에 담고 ‘사색(思索)’하기보다는 더 가깝고 빠른 ‘손 안의 컴퓨터’를 통한 ‘검색’을 선호한다.

이런 시대에 온몸으로 감당한 시대의 고통을 사색과 진리로 승화시킨 신영복 선생을 떠올려 본다. 지난달 15일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만났다.

이 책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선생이 ‘20년 20일’이라는 긴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와 동생, 형수, 제수에게 보낸 글을 엮은 옥중서간집이다. 선생은 그 긴 시간을 유유한 자세로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로 채웠다. 글 속에서 당시 직면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제된 마음의 표현이 읽혀질 때 가슴 뭉클함과 위로를 동시에 받는다.

‘나의 대학생활’이라고 표현하는 20년 복역 기간. 선생은 육순 노인부터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20여명의 식구가 한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를 사회·역사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말한다. 또 긴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어서 대단히 완고한 것이며,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선생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 귀속적인 존재이므로 어떤 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며, 그 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개인이 달성한 결과나 업적을 그 사람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처지나 환경 등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들은 결과에 묻히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한다는 선생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진솔하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 편지 한 편 한 편에 담긴 선생의 철학이 바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준다. 정작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 가족, 연대, 관계,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던진다.

선생은 생전에 한 강연에서 “무릇 대학생활은 그릇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대학생활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내용을 채우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비록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검색’의 편리함보다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사색’의 힘을 믿고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돌베개, 400쪽, 1만3000원)

오재섭 < 대전 한밭도서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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