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퀘이드 지음 / 이충호 옮김 / 문학동네 / 380쪽 / 1만6000원
[ 고재연 기자 ]
1990년 3월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에서 브로콜리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 영양학자들은 이 결정이 미국 어린이들의 편식을 부추긴다며 반대했고, 분노한 캘리포니아주 농부들은 브로콜리 10t을 트럭에 싣고 대륙을 횡단해 워싱턴DC로 향했다. 지속적인 해명 요구가 이어지자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브로콜리가 싫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싫어했는데, 어머니가 억지로 먹게 했어요. 나는 이제 미국 대통령이니 더 이상 브로콜리를 먹지 않겠습니다!”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브로콜리를 싫어했다. 브로콜리를 사랑했던 그의 할머니와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미각은 매우 역설적이다. 다른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DNA를 통해 프로그래밍되지만, 다른 감각들과 달리 경험과 사회적 단서를 통해 형성되기도 하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변하기도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저널리스트 존 매퀘이드는 《미각의 비밀》에서 미각이 어떻게 인간의 진화를 이끌어왔는가를 파헤친다. 유전자가 우리의 미각을 어떻게 빚어냈는지, 왜 같은 음식인데도 어떤 사람은 역겨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느끼는지, 맛에 대한 현대인의 극단적인 집착이 뇌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지 등을 차례로 분석한다.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건 ‘쓴맛 민감도’가 남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맛 지각은 DNA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유전 형질이다. 그중에서도 쓴맛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몸에 독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생물학적 경보 시스템’으로 작용하며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여온 것이다.
약 10만년 전 현생 인류 역시 쓴맛을 느끼는 형질과 그렇지 못한 형질로 나뉘었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저자는 “이 놀라운 여행의 기록은 현재 우리의 맛 유전자에 각인돼 있다”며 “쓴맛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갈라진 창시자 집단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오늘날 전체 인류 중 대부분은 두 집단 중 하나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쓴맛 민감도는 서식지와 기후, 음식, 생존을 위한 도전 과제에 따라 변화했다. 예를 들어 영국 동북부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쓴맛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인도의 일부 인종 집단에서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영국에서는 맥주가, 인도 요리에서는 톡 쏘는 맛이 강한 여주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는 쓴맛 민감도가 더욱 낮은 편이다. 이들의 전통 음식인 생선과 물범에 쓴맛이 거의 없어서 그것을 감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은 곧 인류가 가진 미각이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우리가 왜 커피나 맥주의 쓴맛, 고추와 고추냉이의 매운맛처럼 본질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느끼기에 ‘불쾌한 맛’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맛감각은 유전자와 인생 경험 사이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변증법”이라며 “나이를 먹으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되면 쓴맛은 점점 더 부드러운 맛으로 변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맛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순을 수용하는 이 능력, 혐오스러운 것도 받아들이는 기묘한 열망이 요리에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류의 ‘진화 역사’와 개인적 삶이 어우러져 미세하게 서로 다른 미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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