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돌며 '경제계 호소문' 전달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시장경제 원칙 훼손
소액주주가 이사 선임하는 나라 전혀 없어
"경영권 묶여 외국 투기자본 먹잇감 될 것"
[ 강현우 기자 ] ‘야당의 상법 개정안은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취지와 달리 경영 자율성을 과도하게 제한한다. 도둑 잡자고 야간 통행을 전면 금지하자는 격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재벌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상법 개정 등을 통한 재벌개혁을 2월 임시국회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국회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10여건이 상정돼 있다.
경제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주주권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자칫 본래 취지와 달리 경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외국 투기자본에 휘둘려 막대한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기업하기 가장 힘든 나라”
대한상공회의소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국회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은 이날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조배숙 국민의당 정책위 의장을 만난 데 이어 9일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이종구 바른정당 정책위 의장과 면담한다.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는 가운데 경제단체가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상의는 그러나 야당의 상법 개정안 중 △노조·소액주주 등의 사외이사 선임권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회사 분할 시 자사주 활용규제 등 6개 항목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등 문제가 많은 만큼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장기불황과 글로벌 경쟁으로 지친 기업들에 지배구조 개선을 명목으로 규제 수위를 높이면 자칫 환자가 수술받는 도중 사망하는 ‘테이블 데스(table death)’와 같은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노조와 소액주주 등이 선임한 이사가 경영에 참여하면 이해관계자의 이익만 주장해 합리적 의사결정이 지연 또는 왜곡되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환경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의에 따르면 현재 소액주주에 사외이사 선임권을 부여한 해외 입법례는 없다.
◆비슷한 입법 사례 드물어
상의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나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1주 1의결권’의 시장경제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소액주주가 아니라 투기펀드만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집중투표제와 조합하면 대주주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반면 지분 쪼개기(3% 이하)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투기자본은 서로 연합해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감사위원 분리선임·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도입한 국가는 없으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3개국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중대표소송은 주주 간 이해가 상충할 소지가 있고 소송 남용 가능성이 크다고 상의는 분석했다. 주주총회 현장에 가지 못하는 주주들이 인터넷 등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투기자본 등의 악의적 루머 공격 때 투표 쏠림이 나타나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자사주 활용규제는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하고 그 수단으로 자사주 활용을 용인한 기존 정책을 뒤집는 조치로 정책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상의의 설명이다. 지금은 한 회사가 자사주를 가진 채 지주회사(모회사)와 사업회사(자회사)로 인적분할을 하면 지주회사가 자사주만큼 사업회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야권에선 이 같은 제도가 대주주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강화시킨다며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감사위원 분리 선임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갖도록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한다.
■ 집중투표제
두 명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한 주당 이사 후보자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이사 세 명을 뽑을 때 한 주를 가진 주주는 세 표를 한 후보에게 줄 수 있다.
■ 다중대표소송제
모회사 주식을 일정 규모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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