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심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성장률을 연 4%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하자 미국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실현불가능한 수치이자 과장된 목표”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4%의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면 어떨까.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경제성장률에 관한 공식 자료가 실제로 이뤄지는 성장속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하버드대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의 발언을 전했다. 국내총생산(GDP)로 ‘표시’되는 경제성장률의 측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지적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미국경제학회(AEA) 회장을 지낸 경제학계 거물이자 단골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석학이다.
NYT는 이같은 주장이 통계를 조작하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닌 ‘측정(measurement)’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가 과거 자동차와 가전 등 공산품을 생산하는 제조중심에서 서비스와 정보를 주고받는 ‘무형의 거래’로 바뀌면서 경제활동의 총량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경기침체가 종료된 2009년 이후 연간 성장률(GDP 증가율)은 공식적으로 2% 수준에 머물고 있고, 최근 발표된 지난해 4분기 GDP 증가율은 1.6%(연율 환산기준)에 불과했다. 이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연 평균 성장률 3%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NYT는 일부에서 실제 이같은 수치의 정확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측정의 불완전함을 지적했다. GDP는 제품을 제조하는 비용과 소비자가 지불하는 댓가, 근로자가 받는 임금 등 숫자로 표시되는 ‘가격’으로 측정되고 계산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정확히 측정되지는 않는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점. 구글과 페이스북이 무료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는 GDP의 일부로 계량되지 않는다. 보안업체가 무료로 제공하는 백신프로그램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공짜다.
과거에는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해 도서관으로 가서 댓가를 지불하고 책을 빌리거나, 영화관을 가야 했지만 지금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얻는 등의 생산적인 가치가 파생되지만 ‘가격’은 없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질병이 퇴치되면서 수명이 늘어나고 IT 기술의 발달로 삶의 질이 개선되지만 이 역시 ‘측정’되지 않는다. 마치 유럽연합(EU)이 2013년 마약과 성매매를 포함시킬 경우 영국의 GDP가 0.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것처럼 ‘측정’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설명이다.
성장의 불완전한 측정에 따른 다른 문제는 성장과 생산성이 과소평가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낮은 성장률과 이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 확산, 이에 따른 기업의 투자위축, 이를 바꾸기 위한 세금과 무역 등과 관련된 정부 정책의 변화 등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측정이 성장이 둔화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 못지 않게 성장의 과실이 “이전보다 덜 균등하게 배분된다”고 오도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보다 낮게 측정된 성장 속도로 인해 비관주의가 커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는 설명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오도된 측정이 실제 소득, 특히 중산층의 소득은 그다지 상승하지 않았다는 대중들의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정치· 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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