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백신공장 건설은 사업성 문제로 표류하다가 작년에야 짓기로 결정됐습니다. 막상 만들어놨는데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거든요.”
지난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국산 구제역 백신 생산이 왜 지체됐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이런 답변을 내놨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국산 구제역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역량이 못 따라가고 있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이날 농식품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두고 그동안 정부의 구제역 대응이 얼마나 오락가락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2011년부터 백신 개발을 추진해 261억원짜리 구제역백신연구센터를 짓고도 왜 아직까지 진척이 없었는지 실마리가 풀렸다”고 말했다. ▶본지 2월14일자 A2면 참조
정부가 ‘2010년의 교훈’을 그새 잊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당시 발생한 구제역은 소와 돼지 등 ‘348만여마리 살처분’이라는 사상 최대 피해를 냈다. 이후 정부는 구제역 백신 국산화를 적극 추진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월 라디오 연설에서 “구제역 백신을 자체 생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구제역백신연구센터 설립 등 국산 백신 개발 로드맵이 제시된 것도 이때다.
국산 백신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2014년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면서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그 결과 백신 개발 관련 예산이 대폭 축소되고 2015년 완공된 구제역백신연구센터에 단 9명의 인력만 배치되는 등 개발 동력이 상실됐다.
정부의 오판은 올해 O형과 A형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구제역 백신 부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백신이 없어 외국 제약회사 반응만 살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구제역 백신에 대한 정부의 갈지자 행보는 농가와 국민의 불신만 키웠다. 벌써부터 “이번 구제역이 무사히 지나가면 국산 백신 개발 움직임은 쏙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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