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섭 / 김진성 기자 ] 선진국에도 ‘테마주’의 존재는 있다. 미국에서도 대선철이면 정치 테마주가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모으고 같은 대학 출신까지 엮는 한국의 ‘정경유착식 테마주’는 아니다. 주로 후보의 정책에 따른 수혜 여부를 따져 테마주로 분류된다. 미국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트럼프 정부 초대 내무장관으로 거론되자 석유 시추를 하는 에너지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식이다. 페일린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밀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떨어지자 태양광 등 관련주는 하락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테마주의 변동성도 크지 않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당선자였던 시절 지명한 장관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로 구성한 ‘트럼프내각지수’를 만들었다. 골드만삭스, 엑슨모빌 등 내각에 포함된 인물들이 주식을 갖고 있거나 경영에 참여한 상장사 15곳의 주가의 평균으로 만든 지수다. 이 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11월8일 이후 지난 9일까지 0.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시장 대표지수인 S&P500은 2% 이상 상승했다. 강현철 NH투자증권 글로벌투자전략 부장은 “한국에 이 같은 내각이 구성되면 정경유착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주가가 치솟았을 것”이라며 “미국에선 대선 후보의 참모들을 샅샅이 분석해 향후 경제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과정에서 테마주가 나온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작전세력’은 존재한다. 1980~1990년대 작전세력들은 외곽 사무실, 이른바 ‘보일러룸(boiler room)’을 통해 주가 조작을 했다. 이들은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업체의 상승기였던 ‘닷컴거품’ 당시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작전세력이나 미공개정보 이용 등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다 보니 실행 건수나 적발 건수가 많지 않다. 미국 헤지펀드 갤리언의 설립자 라지 라자라트남은 2009년 투자대상 회사의 내부 정보를 먼저 입수한 뒤 이를 활용해 투자한 혐의로 체포됐다. 맨해튼지방법원은 “내부자거래는 민주사회의 자유시장에 대한 도전”이라며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그에게 벌금 1000만달러, 추징금 5380만달러를 추가로 부과했다. 그는 아직도 노스캐롤라이나주 버트너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3월 주가조작이나 작전 세력을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금융위원회 조사인력에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해 통신사실 조회, 출국금지 등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사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전문성과 인력 등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주가조작·내부자거래 혐의가 발견되자마자 통신조회, 압수수색 등 수사권을 발동해 조사에 나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일본 금융청, 영국 금융감독청(FSA) 등에 비해 권한도 적다.
김우섭/김진성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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