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832쪽 / 3만5000원
[ 송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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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용사로 ‘명예제대’했지만 살 길이 막막했다. 육촌형 집의 한 평 남짓한 연탄창고를 개조한 쪽방에 살며 ‘주경야독’으로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남보다 3년 늦게 대학에 들어가 혼자 힘으로 학업을 마친 뒤 1962년 어릴 때부터 꿈꾸던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잘나가는 재무 관료로 재무부 이재국(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 과장과 국장, 기획관리실장과 차관보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직후 오해에서 빚어진 ‘대통령 처삼촌 면회 요청 거절 죄’로 해직됐다. 약 2년간 야인 생활을 하며 절치부심하다 중앙투신금융·신한은행·외환은행 최고경영자(CEO)로 큰 성과를 올리고, 11년 만에 재무부 장관으로 금의환향했다. 숱한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성공적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그에게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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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재정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요직에 있던 이 전 장관이 남덕우 당시 재무부 장관을 보필하면서 경제개발 수행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금 동원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는 기업들에 실탄을 제공하고 금리 비용을 낮춰주고, 기업에 금융자금이 쏠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기관 및 제도를 수립해 자리 잡게 한 핵심 실무자였다. 정부가 신용할당 기능을 틀어쥐고 금융자금을 정책 목적에 맞게 배분한 ‘정책금융’의 일선에서 뛰었다.
이를 두고 ‘관치금융’이란 비난도 적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이렇게 평가한다. “정부의 신용할당에 의한 실물부문 경제개발이란 이득은 금융부문의 자율성 억제라는 손실보다 월등했다.” 저자는 이 전 장관을 변화무쌍한 삶의 현장에 인생을 쌓아온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정책도 그렇지만 삶도 담백한 현실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기 누구보다 치열하고 과감했던 이 전 장관을 비롯한 재무 관료들의 활약과 부처 간 갈등, 석유 파동·사채 동결 등 굵직한 사건에 맞선 정책적 대응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시장경제 기반이 부실하던 시절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틀을 확립해 오늘의 한국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정부 부문의 경쟁력 하락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경제개발 초기 우리 사회를 이끈 공직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며 “무엇보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떨어진 한 젊은이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지혜와 용기, 위안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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