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고객이 성공해야 회사도 성공…증권업,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때
상장사도 배당 더 늘리고 지배구조 개선해 투자자 기대 부응해야
시장 활성화 하려면 증권저축제도 부활해 세제 혜택 줄 필요도
5~6년 박스권, 대세상승 위한 에너지 응축…악재 소멸땐 우상향
[ 이현진 기자 ]
“10년 전 아모레퍼시픽, 30년 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은 기업가들이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당장 1~2년 뒤라면 몰라도 한국 주식시장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봅니다. 자식들에게 집보다 주식을 물려주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미국 3대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점을 갈아 치우고 있지만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좀처럼 박스권을 뚫지 못하고 있다. 상장사들의 실적 호전에도 대내외 정치적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강하다. 어떻게 하면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고 거래를 활성화할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이제 다시 주식이다’의 1부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황영기 회장 사회로 열린 이 자리에는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이 참석했다.
▷황영기 회장=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세 개의 축이 있습니다. 투자 대상이 되는 기업, 기업을 투자자에게 소개해주는 증권사와 운용사, 그리고 투자자입니다. 주식 투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닥권이라는 한국경제신문의 보도가 있었는데, 각각의 시장 참가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최현만 부회장=우선 상장사들이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친화 경영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저성장 시대에 주식시장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야죠. 지배구조도 지금보다 더 개선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투자자가 주식 투자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착화한 저금리, 늘어난 기대수명 등을 감안하면 주식으로 대표되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김원규 사장=그동안 증권업계의 잘못된 행태가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증권가 찌라시’ ‘작전세력’ 같은 부정적 표현이 증권사를 불신의 존재로 여기게 했습니다.자본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비하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우리 스스로에 너무 관대해서도 안 됩니다.
▷강대석 사장=김 사장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투자자의 질책을 달게 받아들입니다. 다만 개인투자자에게 약간의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들이 가장 피해야 할 투자 행태가 정보와 시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대선 테마주가 대표적이죠. 주식 투자의 출발은 종목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분석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투자자 스스로도 공부하고 신중히 분석하는 투자 습관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재철 사장=신입사원 시절부터 증권업계에 몸담아온 저도 최근의 시장 불신에 큰 책임을 느낍니다. 시장 활성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증권저축제도 부활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 제도는 1973년 처음 시작돼 1996, 2000, 2001년 한시적으로 허용됐죠. 가입자가 증권저축계좌를 통해 3000만~5000만원 한도로 주식을 사면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주는 겁니다. 과거 대부분의 투자자가 세제 혜택과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봤습니다. 투자자도 이익을 보고 시장 신뢰도 회복할 방법이라고 봅니다.
▷황 회장=증권사가 고객 수익률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있어 투자자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도 빈번히 나옵니다.
▷김 사장=그동안 증권사들이 단기 이익을 좇아 랩 어카운트(자산관리계좌) 등 유행에 따라 상품을 추천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모르쇠’로 돌아선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고객들이 실망해온 것이죠. 좋은 상품을 꾸려서 고객에게 제시한다는 증권업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강 사장=고객 수익이 늘어야 회사 수익도 증가하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요즘 투자자들은 워낙 스마트하기 때문에 거래 증권사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립니다. 이 때문에 5년 전부터 고객 수익률을 직원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등 ‘고객 최우선 정책’을 펴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 정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나 사장=대신증권도 성과 평가뿐 아니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평가 요소에도 고객 수익률을 일부 반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돈을 못 벌면 회사의 미래도 없다고 봅니다.
▷최 부회장=투자자의 연령, 목적에 따른 주식 연계 상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게 고객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미래에셋대우는 기업과 투자자를 연계해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성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신성장투자조합’을 지속적으로 결성해나갈 계획입니다. 벤처기업 생태계를 키워 우량 기업으로 육성하는 과정에서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수익을 공유할 수 있죠.
▷황 회장=공모펀드에 대한 걱정도 큽니다. 올 들어서도 벌써 약 2조3000억원이 빠져나갔습니다. 오죽하면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사모재간접공모펀드까지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서 공모펀드의 침체를 어떻게 보십니까.
▷강 사장=공모펀드의 운용을 좀 더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형펀드를 예로 들어볼까요. 상품 구조가 정해지면 기본적으로 시가총액 비중에 맞춰 모델 포트폴리오를 정합니다. 자금이 드나드는 양에 따라 기계적으로 종목을 더 사고파는 수준의 운용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시장 수익률을 넘기 힘듭니다. 펀드를 설계할 때부터 주식, 채권 등 자산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평가 구간에서는 투자 비중을 높이고 고평가 구간에서는 낮추는 식의 운용법을 펀드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야겠죠.
▷나 사장=공모펀드에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성장, 저금리, 박스권 장세에선 이익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공모펀드에 돈을 끌어오기 위해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꾸준하게 나름의 운용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수가 오름세를 타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시기를 준비하는 겁니다.
▷황 회장=지수 상승을 말씀하셨습니다. 박스권 탈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나 사장=국내 증시는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 크게 저평가된 상태입니다. 올해 코스피지수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이 9.6배입니다. 미국 S&P지수 18배, 일본 닛케이225지수 18.4배, 중국 상하이지수 13.6배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5~6년간의 박스권은 지수가 오르기 위한 에너지를 응축하는 기간이었다고 봅니다. 이 에너지가 어느 순간 강하게 분출될 시기가 오리라고 봅니다.
▷강 사장=그동안 국내 증시가 정체돼 있던 가장 큰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업실적. 이것은 지난해부터 반등해 상장사 전반적으로 좋아졌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2~3년간 짓눌러왔던 미국의 저금리와 강달러 현상입니다. 달러 강세장은 외국인 수급에 걸림돌이죠. 이것 역시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등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박스권을 빠져나오는 장이 연출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정국 불안, 북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등의 문제가 해소되면 상승 속도에 더 탄력이 붙을 겁니다.
▷김 사장=지난주 1주일간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열린 국내 기업의 기업설명회(IR)를 다녀왔습니다. 테마섹 노무라 UBS 등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펀더멘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군요. 국내 정치 상황 역시 크게 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에 대한 기대가 기존보다 낮아지며 그 대안으로 한국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지난해 행사에는 펀드매니저 80여명이 참석했는데 올해는 100명 넘게 찾아왔다는 점도 관심의 한 단면이겠죠. 가장 큰 호재는 기업 실적입니다. 지난해 상장사 당기순이익이 100조원을 돌파하고 올해는 110조원까지 넘볼 것으로 예상합니다. 상반기에는 ‘트럼프 리스크’로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 있지만 하반기에는 기업의 이익 창출력을 바탕으로 증시가 재평가될 것으로 봅니다.
정리=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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