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여부 가리는 '특별재판소'…정치적 중립이 생명
■NIE 포인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구성 등을 토론해보자. 헌법재판소의 대표적 결정을 살펴보고 구체적 내용도 함께 알아보자.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관한 분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국가기관이다. 법원의 판결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법률 자체가 상위 법률인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을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일반 민·형사 소송은 다루지 않는다. 다만 민·형사 소송의 당사자(원고나 피고)가 법원의 판결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여겨 소송을 제기하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가려준다. 국가에 따라 헌법재판소를 일반법원과 독립된 기관으로 설치한 곳이 있고, 헌법적 분쟁을 대법원에서 다루는 나라도 있다.
헌법을 최종적으로 유권해석
헌법재판소와 일반법원은 사법적 절차에 따라 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일반법원보다 상위개념이다. 하위법원(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 규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주로 심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일종의 4심제 성격을 띤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법원이나 개인이 관련 판결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에 이뤄진다. 국회나 검찰 등 국가기관이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하는 것을 소추(訴追)라고 한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에 이를 최종 심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탄핵소추’라고 하는 이유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탄핵인용, 거부하는 것을 탄핵기각이라고 한다.
재판관 선임은 3 대 3 대 3
헌법재판소는 독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다. 이는 재판관의 선임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관의 자격을 갖춘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이 중 3명은 대통령이 선임하고, 또다른 3명은 국회가 선출한다. 여야가 한 명씩 추천하고, 한 명은 여야합의로 추천한다. 나머지 3명은 대법원장이 추천한다.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 조치다. 이들은 모두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관은 9명의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기는 6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정년은 70세다. 재판관은 탄핵이나 금고(강제노동을 시키지 않고 수형자를 교도소에 구금하는 형벌) 이상의 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해임되지 않는다. 반면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해 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2월 현재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8명이다. 헌법재판소장이 1월 말 퇴임함으로써 한 자리가 비워진 상태다.
탄핵은 6명 이상 찬성으로 결정
심판정족수는 심판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말한다. 의결정족수는 의사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구성원의 출석수다. 우리나라 국회의 일반적인 의결정족수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헌법재판의 경우 심판정족수 요건이 더 엄격하다. 일단 9인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되 7명 이상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참석자가 7명이 안되면 심판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헌법재판의 주 대상인 법률이나 판결의 위헌 여부, 탄핵, 정당해산, 헌법소원은 7명 이상이 참석해야 심판 자체가 가능하며 이 중 6명 이상이 동일한 판단을 내려야 어떤 결정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도 이에 해당한다. 다만 권한쟁의는 참석자 과반의 의견만으로 심판이 가능하다. 7명이 참석하면 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재판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기관이 따라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그 법률은 결정이 있는 날부터 즉각 효력을 잃거나 법이 개정될 때까지만 효력을 유지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미국·영국 ·일본은 헌법재판소 없어요 !
■NIE 포인트
모든 나라가 헌법재판소를 운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선 상원이 헌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유를 알아보자.
한국·독일은 ‘헌재 국가’
우리나라에선 헌법재판소(헌재)가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을 맡는다. 그럼 다른 나라에서도 헌재가 탄핵 사건을 결정할까? 아니다. 헌재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혼재한다.
탄핵 심판을 다루는 곳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헌재파와 상원파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한국은 헌재파다. 상원파는 상원과 하원이라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 영국 일본과 남미 여러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도 미국 쪽에 속할 것 같은데 의외로 유럽 쪽이다. 1988년 헌법개정 때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범위가 앞 페이지의 설명처럼 많은 점을 감안해 여기에선 탄핵사건만 비교해 보자.
미국에선 하원이 탄핵을 소추(accusation)하고 상원이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에게 헌법위반이나 중대한 법률위반 혐의가 있을 때 하원의원 435명중 과반수(218명)의 찬성으로 소추는 성립한다. 소추는 형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발’하는 절차다. 미국에선 탄핵소추가 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이 우리나라처럼 정지되지 않는다. 미국은 확정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대통령도 평등하게 대한다. 우리나라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오히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평등권 위반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허술한 헌법 체계인 셈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면 국정공백이 길어지고, 외교와 국방 안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상원이 적법 절차·증거수집 따져
하원의 소추가 성립되면 사건은 상원으로 넘어간다. 상원은 주(州)별로 2명씩 선출된 100명의 의원 전체가 나서 소추가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증거는 적법하게 수집됐는지, 대통령의 반론권이 충분히 보장됐는지, 변호사의 조력을 제대로 받았는지,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위반 사안이 중대한지 등을 면밀히 따져본다. 상원은 절대로 결정을 서두르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되고 반민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은 국체이기 때문에 심리와 결정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작용한다. 미국의 탄핵 사례로 보면 결정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는 번개불에 콩 구워먹는 식으로 일사천리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탄핵소추 과정이다.
미국 상원은 혐의를 일괄처리 하지 않는다. 건별로 하나하나 심리하고 별도로 표결한다. 탄핵 소추가 상원에서 확정되려면 3분의 2(67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한 표라도 모자라면 탄핵 소추는 인용(conviction)되지 않고 기각(acquittal)된다.
미국 상원의 탄핵은 표결로 끝난다. 우리나라와 달리 결정문(판결문)을 안 쓴다. 상원의 결정에 불복하는 항소절차는 없다. 상원의 권위가 높고 국민들도 원로정치인의 결정에 승복한다. 탄핵소추가 기각되면 민중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우리 풍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말을 하면 미국에선 정신병자로 취급되기 쉽다. 미국 헌법이 생긴지 240년이 지나는 동안 두 번의 탄핵소추 사건(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있었지만 탄핵된 대통령은 없었다. 그래도 조용히 끝났다. 양원제를 하는 나라들은 모두 미국처럼 탄핵사건을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독일은 헌재 있지만 탄핵 심판 다룬적 없어
우리나라도 미국과 비슷하게 국회가 먼저 탄핵을 소추한다. 과반수 찬성으로 탄핵소추하는 미국 하원과 달리 우리는 300명 의원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탄핵이 소추되면 헌재로 넘어간다. 전체 재판관 9명 중 3분의 2(6명)가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된다. 현재 우리 헌재재판관 수는 박헌철 헌재소장의 정년퇴임으로 8명으로 줄어있다. 또 3월초에 또 다른 재판관이 퇴임할 예정이어서 자칫 7명으로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재판관 정족수 자체가 이미 위헌인 상태라는 지적이 있다. 9명이 모두 재판에 참여해야 위헌 소지가 없다. 7명으로 재판하는 것은 문제여서 사건 자체를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법조계의 지적도 있다. 독일도 우리와 같지만 탄핵소추한 전례가 없다.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탄핵 사건은 왜 최고법원인 대법원 전원합의체(13명 대법관)가 다루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법관 탄핵’을 대법원이 과연 공정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같은 맥락일 수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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