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방·우아한형제들·쿠팡 등 사옥 확장 이전
[ 박희진 기자 ]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테헤란로'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한 때 신생 벤처들의 꿈이 '테헤란로 입성'인 시기도 있었다. 부의 상징인 '강남'이라는 이미지에다 협업을 위해 다른 회사들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을 선호했던 시절이었다. 인력을 수급하기도 교통이 편리한 강남이 최적화됐다는 인식도 있었다.
최근에는 인력 증가로 사무실이 좁아진 정보기술(IT) 스타트업들이 새 둥지를 물색하는 곳으로 아예 '강남'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징적인 의미 보다도 '실속'을 우선에 두고 차기 사옥지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주로 직원들의 편의나 접근성, 근무환경과 복지 등을 고려한 선택이 많다. 산책 공간의 유무, 대중교통과의 접근성 등이 신사옥 위치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됐다. 1인 가구가 많은 스타트업의 특징상 이사나 이동이 필요없도록, 기존의 사옥과 멀지 않는 곳에 새 둥지를 트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직원 늘어난 스타트업, 사무실 확장으로 제2도약 준비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구 공평동. 수도권 전철 1호선 종각역 도보 3분 거리인 노른자 땅 위 빌딩에 최근 한 스타트업이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지난 6일 SC제일은행 본점 빌딩 7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모바일 부동산 중개업체 '직방'이 주인공이다.
직방의 직전 사무실은 2015년 7월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이었다. 당시 60여명에 불과했던 직원이 최근 130명으로 2배 넘게 늘어나면서 더 넓은 사무실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직방 관계자는 "직원들의 나이대가 젊다보니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교통이 편리한 종로에서 역세권 건물을 선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13일부터 사옥 이전 작업에 들어갔다. 신사옥은 송파구 몽촌토성역 인근으로 현재 약 70%의 본사·계열사 인력이 이동을 마쳤다.
우아한형제들이 2012년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로 처음 이사왔을 때 직원 수는 30여명에 정도였다. 현재 계열사를 포함한 전체 직원 수는 400여명으로 4년 만에 10배 넘게 불어났다. 본사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직원들은 본사 인근 사무실에 뿔뿔이 흩어져 근무했다.
우아한형제들의 신사옥은 총 19층 건물로 전 계열사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한 건물에서 계열사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1세대로 꼽히는 쿠팡도 새 사옥 터를 찾았다. 쿠팡은 다음달 중 송파구 잠실역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타워 730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한다. 쿠팡은 2013년 10월부터 강남구 삼성동 경암빌딩을 임대해 쓰고 있다. 이후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현재 본사 직원만 2000명이 넘을 정도로 인력이 불어났다.
숙박 예약 앱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은 사옥을 금천구 가산동에서 이전할 예정이다. 작년에만 130명이 넘는 직원을 새로 뽑은 이 회사는 인력 증가에 따른 사옥 이전을 준비 중이다.
◆임대료 비싼 강남보다 우리만의 공간 선호
그동안 국내 IT 스타트업 사무실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서울 강남구 일대에 집중됐다. 정부나 기업에서 지원하는 공유 사무실이 많고, 근처에 각종 회사들이 몰려있어 협업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강남구 선호 경향이 있긴 하지만 예전만큼 이들 지역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사무실을 확장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임대료 부담이 가장 크다. 높은 임대료를 치를 바에는 그 돈으로 직원 복지에 힘쓰자는 게 의견이 많다.
각종 메신저와 화상 채팅으로 온라인 협업이 수월해진 점도 테헤란로의 매력을 떨어트린 배경이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다양한 온라인 경로로 소통할 수 있다. 최근 스타트업들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창업을 시작하다보니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IT 기업이 많은 판교로 이전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서울과 멀어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직원들의 의견이 많아 후보지에서 뺐다"고 말했다.
조직 문화가 개방적인 IT 업계 특성상 직원들의 의견도 십분 반영된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직원들이 도심 한복판보다는 한적하고 산책하기 좋은 곳을 선호하더라"며 "새 사무실에서는 올림픽공원이 내려다보여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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