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의 컴퓨터 화면에 노트북을 사용하는 여성의 모습이 뜬다. 여성은 노트북에 달린 화상채팅용 소형카메라(웹캠)를 통해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는지도 모르고 일상생활을 한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난해 2월에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웹캠 해킹으로 유출한 수백 개의 사생활 영상이 공유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손승모 스티글 대표는 이런 해킹 피해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판단해 몇 년 전부터 웹캠을 가려주는 노트북 액세서리 아이템 ‘스티글’을 구상했다. 웹캠 위에 붙인 뒤 좌우로 밀면 웹캠을 사용할 수도 가릴 수도 있는 제품이다. 세계 1위 온라인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웹캠’ 카테고리에서 넉 달째 판매 1위다. 지난해 4분기에만 3만여개가 팔려 약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60억원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손 대표는 2013년 웹캠과 관련된 아이템을 사업화하기로 결심했다. 과제를 하려고 학교 주변 카페를 찾았다가 미국 노인들이 모여 포스트잇으로 웹캠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봤다. 해킹을 방지하는 보안 소프트웨어로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어 물리적으로 웹캠 구멍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트북은 거의 매일 쓰는 고가 제품이기 때문에 끈적이는 스티커나 너덜거리는 포스트잇을 대신할 액세서리가 있으면 수요가 적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국에서 창업 지원이 활성화돼 있다는 말을 듣고 3학년을 마친 뒤 귀국해 2015년 3월부터 사업화에 나섰다.
입소문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해 6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노트북 웹캠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며 아마존에 올려뒀던 스티글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 ‘프라이스일렉트로닉스’와도 계약을 맺어 이르면 올 상반기부터 입점한다.
성공적으로 해외 매출을 늘린 데엔 손 대표가 미국에 연고가 있었던 점이 컸다. 미국에 있는 대학 후배와 동기들로 팀을 꾸려 시장조사와 거래처와의 만남을 추진했다. 정보와 기능 중심으로 상품을 홍보할 수 있게 마케팅 문구 하나까지 체크했다.
손 대표는 조만간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행이 중요한 액세서리 제품인 만큼 매출이 서서히 늘고 있는 지금이 적기이기 때문이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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