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기업할 자유를 향한 투쟁이 필요하다

입력 2017-02-20 17:48  

"정치권 기업이해도는 봉건시대 촌락적 세계관
상거래 지원하는 상법을 기업범죄법으로 둔갑시키는 어처구니없는 국회"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기업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굶어 죽을 자유나 강제노동할 자유만큼이나 모순된 것이다. 기업할 자유를 철폐해야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주장한 사람은 헤르베르트 폰 마르쿠제다. 68 문화혁명의 3대 깃발은 마르크스·마오·마르쿠제였다. 그의 잘 알려진 저서 《1차원적 인간》은 기업이, 그리고 현대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제에 대한 쓰잘 데 없는 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쓰잘 데 없는…’이라고 말하면 바로 그 소외 개념을 팔아서 먹고사는 수많은 인문학자를 격앙시킬지 모르겠다. 사실 기업을 싫어하는 것은 도시에 대한 정서만큼이나 오래된 촌락적 사고다.

인간을 소외시키고, 진정한 관계를 파괴하며, 우정을 물질로 치환하며, 심지어 범죄적이라는 것은 기업을 다루는 영화나 만화, 소설과 뉴스들이 다루는 일상적 주제다. 다국적 제약사의 착한 연구원이 냉혈한들이 지배하는 이사회가 강요하는 범죄를 거부하면서 싸우거나, 거대 자본이 꾸미는 AI 사업에 저항하는 것을 드라마틱한 액션물로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큰 인기를 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재벌 회장과, 아들과, 며느리들의 얽히고설킨 갈등과 분쟁을 적당히 섹스와 버무린 주말의 TV드라마를 우리는 보게 된다. 제약사 연구진의 노력 덕분에 각종 질병에서 해방되고, 로보틱스 덕분에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는 축복들은 아예 배제된다.

기업 특히 대기업은 애덤 스미스조차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만큼 인기가 없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민들은 “록펠러는 돈의 황제라네, 그는 태양이 사라진 밤을 지배하네”라고 저주의 유행가를 불렀고, 찰리 채플린은 착착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 신음하는 포드식 공장 노동자를 풍자하는 모던타임스를 창조해냈다. 정말 기업은 범죄적이며 대기업은 더욱 그런 존재인가. 기업에 던져지는 이런 질문은 정확하게 도시에 던져지는 질문과도 같다. 도시는 범죄적이며 대도시는 더욱 그런 존재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적 기업은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었다. 수천개 경쟁하는 석유회사를 갖은 방법으로 파산시켰고, 클리블랜드 대학살 따위로 불리는 무자비한 기업 합병을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밀어붙였다. 덤핑은 주무기였고 독점과 거래 거절은 보조무기였다.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서부의 강도 총잡이들까지 고용했다. 그러나 그는 석유를 현대문명의 새 에너지로 만들었다. 고래기름을 대체하면서 고래를 살렸다는 것은 삽화거리도 안 된다. 록펠러는 무자비한 덤핑 과정에서 기름값을 갤런당 30센트에서 5센트로 끌어내렸다. 그가 끌어내린 저렴한 기름값 덕분에 20세기 현대문명, 즉 자동차와 화학과 전자전기 문명이 일어섰다. 현대문명은 그가 없었다면 너무도 더디게 진행했을 것이다. 록펠러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이것이 핵심이다-마치 신의 사자인 듯 인류를 가난과 질병과 굶주림에서 구해내 20세기로 인도했다.

시장경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기업경제다. 오늘날 시장 경쟁은 기업 단위로 이뤄진다. 기업은 수만명 단위의 전문적 연구·노동 집단을 거느리며 분업과 협업의 집단지성을 경쟁한다. 개인이라는 인간 한계를 초극하는 것이 바로 기업이다. 기업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그 어떤 문명적 가치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업은 여전히 잠재적 범죄집단이다. 지금 국회가 개정을 검토한다는 상법은 기업을 범죄집단으로 보고 기업 행동을 예비 검속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활한 상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 체계가 기업 범죄를 단속하는 법으로 둔갑해버렸다. 조선 주자학의 부활이요, 바보들의 1차원적 세계관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지력은 기업 자체를 알지 못했던 봉건시대와 같다.

기업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세금을 내는 만큼 발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기업과 기업가들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저항해야 한다. 기업할 자유 없이 문명국가는 없다. 기업가들도 기업가 단체들도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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