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성의 연기가 곧 개연성이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지성의 연기에 힘입어 3회 연속 시청률 20% 돌파하며 압도적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성은 캐릭터 박정우와 혼연일체 된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들었다 놨다 하며 월, 화요일 밤을 책임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같은 눈물, 분노도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지성의 놀라운 연기력에 감탄하면서 리모컨을 놓지 못한다. 짜임새가 촘촘하지 못한 허술한 얼개도 지성의 명품 연기로 채워 넣었다. ‘갓지성’ ‘지소드’ 등의 수식어로 배우 지성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20일 방송된 ‘피고인’ 9회에서는 박정우(지성 분)와 차민호(엄기준 분)의 긴장감 넘치는 옥중 심리전이 펼쳐졌다. 모든 기억을 되찾았지만 제대로 된 복수를 하기 위해 기억상실을 연기하는 박정우 그리고 그런 그를 도발하는 차민호의 모습은 보는 이들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날 지성과 엄기준의 팽팽한 기싸움이 흥미로웠던 가운데, 아내를 죽인 철천지원수를 앞에 두고도 모른 척 참아야 하는 지성의 절제된 분노 연기가 일품이었다.
앞서 정우는 아내 지수(손여은 분)가 살해되던 날 밤의 현장과 진범 차민호의 정체까지 잊었던 기억을 전부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이때 정우를 제거하기 위해 제 발로 교도소에 들어온 민호의 등장으로 충격은 배가 됐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은 민호가 바로 눈앞에, 한 감방에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지만, 딸 하연(신린아 분)을 찾기 위해서는 기억이 안 나는 척 거짓 연기를 해야 했다. 일단 이감 및 탈옥에 성공해서 딸을 찾으면 자수하고 재심을 받을 생각이었다. 또한, 정우는 사건 당시 숨겨둔 민호의 혈흔이 묻은 칼과 그의 정체를 밝혀줄 보이스펜, 성문분석결과를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할 계획을 그리며 복수를 다짐했다.
민호는 의심의 눈초리로 정우를 관찰하며 끊임없이 자극했다. 정우 역시 가만히 당하진 않았다. 전직 강력부 검사답게 빠른 판단력과 대처로 민호가 꾸민 덫을 빠져나가며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방송 말미, 정우를 격노하게 만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감 계획을 눈치챈 민호가 사형장이 없는 교도소로 바꾸며 훼방을 놓은 것. 오로지 탈옥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왔기에 정우는 더욱 이를 갈았다. 그리고 월정교도소를 떠나기 전 징벌방에 자신의 피로 차민호의 이름을 남겼다. 이를 본 민호는 희열에 찬 웃음을 터뜨렸고 정우를 호송하던 차량을 급히 되돌리라고 말했다. 정우는 결연한 눈빛으로 민호와의 살벌한 정면 대결을 예고하며 향후 전개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시청자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은 정우가 민호를 속이기 위해 눈물 젖은 빵 먹방 연기를 펼친 장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지수를 흉내 내는 민호의 행동에 이성을 잃은 정우는 목을 조르며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폭발했다. 거짓 기억상실 연기가 탄로 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내 곧 정우는 밀양의 도움으로 순발력을 발휘, “내 빵 내놔!”라고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모든 게 빵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했다. 복수를 위해 울분을 삼키며 빵을 폭풍 흡입하는 박정우의 애잔한 모습은 자칫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에도, 지성의 탄탄한 연기와 만나 명장면으로 탄생했다.
지성의 명품 연기는 교도소라는 한정적인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한 시간을 찰나의 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혼란에 휩싸인 복잡한 감정과 가슴 절절한 부성애, 신들린 발작 연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캐릭터의 감정선을 티끌 하나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해내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고 있다. 지성은 ‘피고인’을 통해 명성을 입증했음은 물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견인하고 있다. 지성의 피나는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벌써 연기대상의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는 상황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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