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주의에 대한 태도에 변화 시사
고율 수입관세 부과 여부가 시험대배리"
배리 아이켄그린 < UC버클리 교수 >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반드시 다자주의를 지지해야 하는 자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기간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한물갔다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했다. 이는 다른 다자주의 기관과 동맹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징조였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 있는 미 중부사령부(중동지역 파견병력 관할 본부)를 찾아 “우리는 NATO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동맹국과 풀어야 할 문제는 회원국 간 적정한 재정 분담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안보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은 안보에 관한 브리핑을 받았든, 집무실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사실을 알게 됐든 그가 다자주의 기구에 대해 달리 평가하게 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대통령조차도 여러 나라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틀이 나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NATO에 대한 그의 관점 변화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바젤 금융감독위원회 등에도 같이 적용되느냐 아니냐다. 선거 유세 내용이나 트위터 기록을 보면 썩 고무적이진 못하다. 2012년 그는 세계은행이 “가난과 ‘기후변화’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 트위터에 비판적인 글을 적고 “우리는 왜 국제기구가 비효율적인지 궁금하다”고 불만을 토했다. 같은 식으로 지난해 7월 그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능력이 제한된다는 이유로 WTO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대선 유세에서 반복적으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NATO에 관한 태도를 바꿨다면, 세계경제도 (안보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판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다른 기구의 장점도 볼 가능성이 있다. 파리기후협약이나 바젤위원회는 미국 기업의 부담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에도 동일한 규칙을 요구하는 기구다.
트럼프는 그 자신의 정책으로 인해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IMF를 통해 수습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95년 미국 재무부는 환율 안정기금을 통해 멕시코에 금융 지원을 확대했고, 2008년 미국 중앙은행(Fed)은 브라질에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 줬다. 만약 이런 비용을 미국 정부가 납세자의 돈으로 직접 지급할 때 트럼프 지지자들이 보여줄 분노나, 사태를 유발한 트럼프 행정부에 다시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멕시코 관료들의 분노를 상상해 보라. 양쪽 모두 IMF를 통해 일하기를 바랄 것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 때 급하게 재지명된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게 만족할 수 없겠지만, “반미 국가는 돕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그가 개발원조의 혜택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그가 (다자주의 기관 대신) 양국 간 직접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미국과 세계은행의 역할을 최소화함으로써 발생하는 빈 공간은 트럼프가 그렇게도 혐오하는 중국이 차지할 전망이다.
WTO는 다자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시험대다. 법인세·개인소득세를 개혁한다거나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오바마케어 폐지 동의 등은 결코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고 트럼프의 강점도 아니다. 이로 인해 그는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WTO 규칙을 어기고 수입품에 일방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일은 그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가 WTO 규칙을 지킬 것인지는 곧 알게 될 일이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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