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에 자율성 보장하고 '거미줄 규제' 혼선 줄여줘야
[ 임락근 기자 ]
“규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걸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의 경쟁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기획팀장은 지난 21일 한경바이오헬스포럼에서 “기술과 산업의 속도는 빠른데 제도가 선제적으로 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혁신 친화적인 규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바이오 헬스케어산업과 관련해 ‘규제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생명윤리법에서 유전자 연구 범위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거나 현재 치료법이 없는 질환으로 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유전자를 활용한 연구에 제한이 없다. 지난해부터 민간기업에 유전자 검사를 허용했지만 비만 피부 등 12개 검사 항목에 그쳤다.
한경바이오헬스포럼에 참석한 위원들은 지나친 규제가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인간의 유전체 해독 가격이 3년 만에 10분의 1로 떨어져 100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는 등 관련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희귀질환 난치병 등 치료제 개발 경쟁도 뜨겁다. 그런 만큼 세계 바이오 헬스산업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혁신을 독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포지티브 방식인 현행 규제 시스템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일부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절대 안 되는 것만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선수가 아니라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성을 가진 대학이나 연구소 내 연구위원회 등이 자율 규제하되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엄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질환만 해도 6000가지가 넘는데 몇 개 질환만 연구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순수 연구만큼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와 바이오기업들이 규제가 왜 만들어지고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 수 있도록 ‘규제 투명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들이 사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가 예측 가능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임기철 서울아산병원 초빙교수는 “정책과 시장이 미스매치돼서는 안 된다”며 “바이오 헬스 생태계가 역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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