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정례회의 이후 가진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며 "지난해 2월 발효된 교역촉진법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조작국 지정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관련 경계감은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이 세부 기준을 바꾸거나 교역촉진법이 아닌 종합무역법을 활용해 지정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고 봤다. 특히 금융, 실물 교역관계가 밀접한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엔 위안화 변동성 확대를 야기해 수출, 원화 환율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총재는 환율 변동이 국내 수출의 가격경쟁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보다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생산비중 확대, 생산활동의 수입중간재 투입 비중 증가, 비가격 경쟁력(품질 등) 영향 증대 등 수출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수출 회복세가 당초 전망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물량과 금액 모두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업황 호조, 유가 상승으로 인한 자원수출국의 경기 회복이 수출 호조에 기여했다"며 "비 IT품목에서도 고루 성장세가 나타나는 등 경제성장 동력으로 수출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점은 우려요인"이라며 "중국이 정치외교 문제로 무역제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 전망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4월 경제위기설에 대해 '과장된 얘기'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상환 부담 등으로 위기설이 제기되는 것으로 안다"며 "이미 알려진 리스크이고 관계기관들이 적극 대비하고 있으므로 크게 우려할 것 없다"고 설명했다.
또 경기 위축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물가상승이 동시 발생)에 빠질 가능성도 낮게 봤다.
그는 "국내 경제는 소비 부진 등으로 내수 회복은 미약하나 수출 호조, 설비투자 부문 개선 덕에 2% 중반의 성장세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물가 목표수준에 부합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스태그플레이션 빠질 확률은 낮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잡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올해 들어 시장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대내외적으로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며 "취약 차주(저소득, 저신용,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실히 둔화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현행 연 1.25% 수준의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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