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잠재된 욕구 파악하려면 먼저 '공감'하라

입력 2017-02-23 16:03  

Let"s Master (3) 디자인 싱킹

오랄비, 어린이용 칫솔 개발 위해 어린이가 칫솔 잡는 법부터 관찰
칫솔 손잡이 짧고 가는데다가 손 힘 약해 '주먹' 쥐고 닦아
이후 굵고 물렁한 손잡이 개발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이경원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기업은 고객 만족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기업을 잘 운영하려면 고객이 누구인지 알고 가치를 두어야 한다. 요즘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선진국의 제품을 벤치마킹하던 후발 주자 시절에는 고객 수요가 이미 확인된 제품을 싸게, 빨리, 품질 좋게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이제 선발 주자로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잠재된 욕구까지 찾아서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정 제품의 잠재된 필요와 수요를 미리 알아차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디자인 싱킹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방법과 비교되는 디자인 싱킹의 특징은 공감(Empathize)하기에 있다. 공감하기는 공급자가 사용자와 고객 입장이 돼서 사용자가 원하는 즉, 잠재된 필요를 찾는 과정이다. 사용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추론해 내는 것이다. 공급자가 현장에 가서 사용자의 입장이 돼 체험해 보면서 추론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오랄비(Oral-B)의 어린이용 칫솔을 개발한 사례를 살펴보자. 그들은 다른 개발자와 달리 어린이들이 칫솔 잡는 방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어린이 칫솔은 어른 칫솔의 크기만 축소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어린이 칫솔은 칫솔 부위와 손잡이가 작았다. 아이들이 어른에 비해 손이 작으니 손잡이도 짧고 가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개발자들은 아이들이 칫솔 잡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이른바 ‘주먹 현상’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손가락으로 가볍게 칫솔을 잡는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칫솔을 잡았다. 손에 힘이 없기 때문에 손가락보다는 주먹으로 움켜쥐고 칫솔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른들의 통념과는 다른 결과였다.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물렁물렁한 촉감의 굵은 손잡이를 가진 칫솔을 개발했다. 어린이가 칫솔을 쥐기가 쉽고 편해진 덕분에 양치 시간도 전보다 훨씬 늘었다고 한다. 고객, 사용자에 대한 철저한 관찰의 결과였다.

대형 병원 응급실에 대한 고객 불만이 많다. 최근 속초의 한 병원에서도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영국 역시 응급실 폭력 사태가 많아서 이를 줄이는 서비스 디자인에 디자인 싱킹 방법을 활용했다.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접수와 함께 상태 초진, 중증도 분류, 엑스레이(X-ray), 자기공명영상(MRI) 등 추가 검사를 거쳐 최종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 이 모든 진료 과정이 매끄럽게 연결된다면 좋겠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는 과정 중간 중간에 피할 수 없는 대기시간이 발생하기 일쑤다. 응급실 진료는 선착순이 아니라 생명이 위태로운 순서를 우선으로 한다. 의료진이 판단하기에 당장 처치를 요하지 않는 상태라면 우선순위에서 밀려 실제 치료를 받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환자마다 자신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고 위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한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모른 채 계속 아픈 상태로 치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의료진이 자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의 치료가 이유 없이 지연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게 되고 결국 극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용자의 불만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응급실 침상에 누워 환자 입장에서 응급실 상황을 찍어본다. 내원자(환자, 보호자)도 심층 인터뷰한다. 내원자와 응급 서비스 접점에서 명확하고 효율적인 정보와 안내 부족이 대기 시간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고, 불만이 환자의 불안과 고통에 더해지면서 인내심을 잃고 의료진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원자를 위해 응급실 상황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안내판과 카탈로그를 개발했다. 응급실 진료 과정을 접수, 평가, 치료, 결과의 네 단계로 나눠 내원자가 현재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또 응급실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주는 것이다. 적용 결과 내원자의 75%가 대기 시간에 대한 불만이 줄었다고 답했다. 그간 응급 의료진을 괴롭혔던 비물리적 형태의 폭력 발생 빈도는 이전 대비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고객이 있는 현장에 가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고객을 만나보자. 사용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에게 물어보고 체험도 해보자. 거기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사용자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아이디어를 찾아보고, 다시 고객의 테스트와 피드백을 받아서 꾸준히 개선해 보자.

이경원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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