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노동계는 최저 임금을 시간당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의 인상 주장은 조기 대통령 선거 국면과 겹치면서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최저임금 제도 개선 투쟁을 선언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내걸며 표심 확보에 나섰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다. 작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전년(6030원)보다 7.3% 올렸다. 내년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바탕으로 사용자 위원 9명, 근로자 위원 9명, 공익 위원 9명 등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오는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노동계에선 최저임금 1만원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근로자의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에선 기업들의 임금 지급 능력과 생산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다수의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우려다. 소득재분배의 사회적 책임을 영세사업자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OECD 수준에 맞게 인상 필요…소모적 논쟁보다 '로드맵' 그려야
지난 20대 총선에서 여야는 앞다퉈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달성 시점만 2019년과 2020년으로 차이가 있었다. 최저임금 1만원이 국민적 공감대라는 뜻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은 수준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강조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국제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몇 년째 계속되는 유례없는 저성장과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최저 임금 1만원은 필요하다.
우리는 불균형 고도성장 과정에서의 모순 극복과 적폐 청산을 통해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최저 임금 1만원은 대전환의 계기로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 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사퇴서 제출, 최저임금법의 조속한 개정과 신속처리 안건 지정 및 회의 보이콧 등 배수진을 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올해 최저임금 결정도 파란이 예상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더욱 그렇다.
몇 년째 지속되는 소모적인 논쟁은 끝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책조합과 로드맵에 대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 발생과 자영업자 및 중소영세기업의 경영난을 심화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저 임금을 대폭 올리면 당장 영세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와 노·사·정 현장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하면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다른 제도나 구조의 문제가 더 크다.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당경쟁, 높은 임대료 및 수수료 등이 핵심 원인이다.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이 이뤄지면 적정 이윤을 보장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과잉공급도 따지고 보면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은 저임금, 인원 감축 위주의 강제적이고 일상적인 구조조정, 비민주적인 기업 문화와 반노조 문화 때문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등 경제주체 간 관계와 가격결정력, 즉 경제민주화의 문제라는 얘기다.
정책조합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 수준에 걸맞게 올라간다면 이 같은 불균형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영세업자가 임금 노동자로 흡수되고 노동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영세업자들의 수가 감소하면 과당 경쟁이 해소되고, 임금인상 결과 수요창출 등으로 남은 업체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고용효과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카드 미국 버클리대 교수와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구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최저임금을 20% 가까이 올린 뉴저지주와 임금을 동결한 펜실베이니아주의 사례를 비교한 결과, 최저임금을 올린 뉴저지의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펜실베이니아 업체보다 고용을 더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였다.
세상의 변화는 실천하는 자의 몫이다. 실천은 용기와 결단을 요구한다. 미국의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대재앙은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촉발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저임금으로 인한 수요 부진, 기업의 과잉유보와 저투자가 있었다. 적극적 역할을 방기한 정부의 무능은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2014년 기준 18%의 조세부담률을 부자감세 이전인 2007년의 19.6%로만 올려도 연간 24조원의 추가세입 확보가 가능하다. 이 돈으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선별 지원하면 정부 재정만으로도 최저 임금 1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
○반대
저임금 근로자·자영업자 생존 위협…물가·생산성 고려하면 아직 이르다
최저임금은 정치권에서도 인기 있는 테마다. 모든 정당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서로 질세라 한목소리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8000~9000원까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각 2020년, 2019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최저임금 1만원은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사회에서 고통받는 저임근로자에게 큰 희망을 주는 측면이 있다. 이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발생한 경제적 약자들을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서 빈곤 해소, 소득불균형 개선을 이루고 나아가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정책으로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과연 그렇게 될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저임금 1만원은 다음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최저임금 1만원은 현재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된다. 최저임금 1만원은 현행 대비 57.7% 인상으로, 이런 대폭 인상이 단기간에 이뤄질 경우 기업은 급격한 노동비용 증가로 인해 인력절약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 경비원을 폐쇄회로TV(CCTV)로 대체하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일자리를 줄이는 흔한 사례다. 선의에서 나온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저임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최저임금 1만원은 기업의 고용능력을 악화시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취업을 어렵게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50~60대 중·노년층과 주부들이 될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의도와 달리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보다 고용안정이 보장된 기득권층의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미취업자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최저임금 1만원은 다수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이들은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85%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 사정이 양호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은 최저임금이 상관없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지속된 불황으로 경영 상황이 악화됐고, 이로 인해 인건비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 많은 근로자가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다. 2014년 전체 근로자의 12.1%가 이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은 거대 자본가와 노동자 간, 즉 전형적인 강자와 약자 간 노사 대립 구조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오히려 취약근로자와 영세사업자 간, 즉 피차 형편이 어려운 자 간 힘든 싸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임금으로 인한 근로 빈곤 문제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저임근로자 문제를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이너스 소득세 및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근로연계 복지정책, 기타 사회복지제도의 적극적 활용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저임근로자의 낮은 임금을 세제혜택이나 복지혜택으로 국가 차원에서 보충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한 번에 대폭 인상하는 것보다 물가와 생산성을 고려해 기업의 지급능력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바람직하다. 임금인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해진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가 더 이상 없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일자리를 잃든 말든, 기업이 망하든 말든, 경제가 무너지든 말든, 임금 대폭 인상 주장으로 근로자들의 환심을 사고 이런 포퓰리즘으로 자기 세력을 강화하고, 종국에는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한 사례는 여러 남미 국가나 그리스로 충분하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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