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효과? CEO들이 연필 찾는 이유

입력 2017-03-0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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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안종범 학습효과’일까요. 최근 정치인, 제조업체 및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연필로 일정을 정리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모바일로 일정 관리를 하는 게 보편화됐고, 성능 좋은 일정 관리 앱(응용 프로그램)도 쏟아지고 있는데 연필로 직접 일정을 관리한다니 조금 의아할 수는 있습니다.

모든 일정을 수첩에 연필로 쓴다는 건 아니고, 사적인 일정이나 공개하기 껄끄러운 사안에 한해 수첩에 연필로 메모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연필로 일정을 메모해놓으면 한달 가량 지나서 한꺼번에 일정을 지우는 방식으로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지난 달은 아예 수첩을 찢어내 기록을 없앨 수도 있습니다.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추진해 혹시 모를 상황에 이런 식으로 대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를 마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이 일종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됐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스모킹 건은 말 그대로 연기 나는 총을 의미합니다. 부인하기 어려운 범죄의 결정적 증거나 단서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안 전 수석이 대통령 일정과 공식 일정과는 별도의 지시사항을 수첩 형태에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기록해놓다 보니 수사 과정에서 많은 단서를 제공했다는 겁니다.

연일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괜스레 수첩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CEO들이 생긴겁니다. 이르면 50대, 대부분 60대에 포진해 있는 각계 CEO들은 현장 방문이나 사내외 행사 등 공식적인 일정은 비서를 통해 태블릿PC나 노트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인 일정 등은 수첩 형태로 지니고 다니는 일이 많거든요.

한 CEO는 “공개돼도 별 문제 없는 일정과 메모들이 대부분이지만 기분상 영구적으로 어딘가에 기록을 남겨놓는다는 게 꺼림칙해진 건 사실”이라고 귀띔하더라고요.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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